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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호의 장애학 이야기제목:두번째 이야기 마당, 장애인의 역사, 글:한국D.P.I 정책팀장, 윤삼호

장애의 개념적 기초와 장애모형                             David Johnstone 지음 / 윤삼호 번역


인류의 역사는 장애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대 이전 장애인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장애인의 역사를 다룬 문헌이나 정보가 별로 없을뿐더러,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역사학자도 부족한 탓이다. 혹은, 역사는 언제나 힘 있는 자들의 입장에서 기술되기 마련인데, 그 어떤 역사에서도 장애인들이 힘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탓일 수도 있다. 이처럼 역사를 잃어버린 장애인들이 오늘날까지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여러 장애학자들은 장애의 역사, 정확하게 말하면 장애인 억압과 학대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들은 충분한 정보는 없지만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제도나 문화 혹은 상징이나 지배 이데올로기를 통해 장애인들의 삶의 조각들을 모아 그들의 삶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장애학자들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장애인의 역사를 고대ㆍ중세ㆍ근현대로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1. 고대 사회의 장애인

생산력이 낮았던 고대 사회는 전쟁을 통해 이웃 국가/부족의 생산물과 노동력을 강탈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따라서, ‘건강한 신체를 가진 남자’가 그 당시 가치 있는 인간의 기준이었다. 반면에 여자나 병약한 남자들, 즉 장애인들은 사회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어 죽임을 당하거나 조롱거리가 되었다. 특히, 다른 어떤 사회보다 고대 그리스ㆍ로마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고대 그리스 사회의 장애인

그리스인들은 서구 문명의 기초를 닦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서구인들의 “현대적 생활은 어느 것 하나 그리스인들에게 빚지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사회는 노예제를 통해 유지되었기에 철저하게 계급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시민의 권리는 그리스 혈통을 가진 건강한 남자들의 전유물이었고,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 툭하면 전쟁을 일으켰다. 게다가,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았던 그리스인들은 현실적 향락에 빠져들었다.

이런 사회에서, 그리스인들은 육체적, 정신적 완전함을 제일로 중요시했다. 따라서 장애나 결함이 있는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제거당하기도 했다. 군사훈련과 운동 경기에 참여할 수 없는 장애 아이들은 자라서 ‘식충이’가 된다는 이유로 들판에 내다버리는 풍습이 만연했는데, 이를 역사학자들은 ‘유아살해(infanticide)’라 부른다. 고대 그리스의 유아살해는 주로 강제로 자행되었지만, 일부 도시국가에서는 부모들이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특히, 스파르타의 경우는 리쿠르고스(Lycurgus)법에 따라 모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고, 그 결과 ‘결함 있는 아이’로 판명되면 야산에 내다버려야 했다. 최근, 관객몰이를 한 헐리우드 영화 <300>이 그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영화는 “소년이 태어났을 때, 모든 스파르타인들처럼 검사를 받았다. 작거나, 병약하거나 결함이 있었다면 그 아이 역시 폐기되었을 것이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카메라가 계곡 앞에 서 있는 심판관과 그의 팔에 안겨 있는 장애 아기를 비춘다. 계곡에는 이미 버려진 장애 아이들의 해골들이 즐비하다. 이 장면은 연출자의 상상력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다.

1992년에 개봉한 영화 <베트맨 2>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한 어머니가 흉측한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를 강에 내다버리는데, 이 아이가 자라서 펭귄의 모습을 한 괴물이 되어 사람들을 괴롭힌다. 이처럼, 고대 사회의 유아 살해 풍습이 오늘날 대중문화의 모티브가 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즉, 고대 사회의 악습이 현대 사회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장애인관은 그들의 신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수많은 그리스의 신들 가운데 장애가 있는 신은 헤파이스토스뿐이다. 그의 부모인 제우스와 헤라는 아들이 ‘절름발이’라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떨어뜨렸다. 일종의 유아살해를 시도한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헤파이스토스는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녀 역시 남편이 ‘절름발이’ 라는 이유로 건장한 군신(軍神) 아레스와 사랑에 빠진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장애 - 배제 - 성적 불구라는 조합의 원형으로도 손색이 없다.

오늘날 추앙받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대철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플라톤은 “인구와 재산의 균형을 위해 허약하거나 불구인 사람은 유기하거나 살해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어란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데, 농아인은 사상을 나르는 언어를 갖지 못했기에 이성도 없고 교육을 받을 수도 없다’는 언어선천설(言語先天說)을 주장했다.

로마 제국의 장애인

고대 로마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을 복속시키고 제국이 되었지만, 그리스의 문화는 그대로 계승했다. 그래서, 로마 제국 역시 노예경제를 기반으로 개인의 시민적 권리를 존중하고, 전쟁을 즐겼으며, 물질적 쾌락을 중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살해하는 풍습도 닮았다. 그리스인들은 장애 아이들을 야산에 버려 아사시켰다면, 로마인들은 티버강에 빠뜨려 익사시켰다.

운 좋게 살아남은 성인 장애인들은 귀족과 시민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난쟁이’와 ‘농인 남자’를 격투장에 몰아넣고 이방인 여자나 짐승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로마인들은 낄낄거렸다. 그래도 이 정도는 다행이다. 정말 운이 나쁜 장애인들은 폭군 네로의 활쏘기 표적이 되어야했다.

이렇게 야만적인 고대 그리스ㆍ로마 사회에서도 장애인들의 삶에 도움 되는 노력들도 있었는데, 후천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을 위한 과학적 치료법이 이 당시부터 연구되었다. 예를 들면,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히포크라테스는 각각 농(聾)과 간질 치료법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여러 수치요법과 건강요법들을 개발하였다. 이들은 이러한 손상들을 윤리적 혹은 종교적 문제가 아닌 생리학의 문제로 보았다. 이 점은 장애를 죄의 대가나 업보로 보던 중세적 장애인관보다 더 진보적이었다.

요약

고대 사회는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라는 이유로 장애인을 합법적으로 제거되거나, 살아남은 장애인들은 주류 사회의 유희를 위한 조롱거리로 삼던 사회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도 당시 자연과학은 오늘날 의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2. 중세 사회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의 국가들은 대부분 종교의 지배를 받던 사회였다. 따라서, 중세 사회에 살았던 장애인들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 당시 종교가 장애인을 어떤 시각을 보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중세의 종교들 -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 은 고대 사회의 다신교와 달리 특정한 성인 혹은 신을 신봉하고 통일성과 보편성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종교들은 도시국가 혹은 부족사회들로 구성되었던 고대 사회를 대체하고 새로운 통일 국가를 경영하려는 지배 세력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이데올로기를 제공하였다. 그것은 야만적인 고대적 가치관을 전복시키는 ‘사랑’과 ‘자비’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였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중세 사회는 장애인을 살해하던 악습을 금지하였다.

장애인 = 불결한 사람

그렇다고 중세 사회에서 장애인들의 인간 해방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 시기 장애인들은 합법적이고 체계적인 살해의 위험에서는 벗어났으나, 또 다른 억압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죄의 대가’이고, 불교적으로 말하면 ‘업보’라는 낙인이었다. 즉,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자신이나 부모가 지은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장애관은 고대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각이었다. 그 결과, 중세의 장애인들은 제거의 대상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죄를 지은 불결한 인간’이나 ‘죄의 대가를 치루지 못한 불경한 인간’ 쯤으로 치부되어 사회적 격리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이 같은 중세적 장애관은 각 종교의 경전에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구약성서 레위기를 보면, “소경이나 절뚝발이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곱사등이나 난장이나, 눈에 백막(白膜)이 있는 자나 괴혈병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불알 상한 자”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구절이 있다.

불교 경전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불교의 4대 계율서 가운데 하나인〈사분율 四分律〉수계건도(受戒度)편에는 “손이나 다리, 귀가 없는 이, 풍병이 있는 이 등은 구족계를 받을 수 없다”고 나와 있다. 물론, 이런 경전들은 고대 사회에 기록된 것이지만, 중세 사회에서 그 영향력이 더 컸다는 점에서 중세인들의 장애인관을 지배했다고 볼 수 있다.

장애 = 죄의 대가 혹은 업보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처럼 노골적인 장애인 비하는 별로 없지만, 장애를 죄의 대가로 보고 있는 대목이 있다. 마태복음에 “예수가 중풍병자를 보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대목이 있다. 이를 오늘날 표현으로 옮기면,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뇌병변장애인이 되었는데, 예수가 그 죄를 면해주어서 비장애인으로 거듭 났다는 것이다.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원인은 상응한 결과를 낳고 모든 결과는 원인을 제거한다는 이른바 ‘인과율(因果律)’로 장애를 설명한다. 따라서, 장애의 원인 또한 전생의 ‘업보’에 의한 것이다. 이를테면, 대승불교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불경 주석서인 <대지도론 大智度論>은 장애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맹목(盲目), 즉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전생에서 타인의 눈을 상하게 하거나 불탑의 사리나 등불을 훔쳤기 때문이고, 농(聾), 즉 말을 못하는 것은 전생에 스승의 가르침을 순순히 따르지 않고 도리어 성을 내면서 대들었기 때문이고, 암아(暗啞), 즉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전생에 타인의 혀를 자르거나 그 입을 막았기 때문이고, 기형이나 불구는 악행에 대한 업보의 결과이다.

또, 중세 말기 종교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신앙심으로 신의 구제를 받을 수 있는데, 그 신앙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말로서 고백할 수 있어야 생긴다’고 했다. 이 말은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 즉 농인들은 신앙을 통해 구제 받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고대 사회가 장애인 치료법 개발에 기여했듯이, 중세 사회 역시 장애인의 삶에 기여한 바가 있다. 자급자족 사회였던 중세 사회는 공동체에 속한 장애인들을 추방하지 않고 일정한 역할을 주었다. 가령, 장애인들도 단순한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거들 수 있었고, ‘동네 얼간이(village idiots)’로서 주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특히, 중세 말기부터 서양에서는 수도원들이, 그리고 동양에서는 불교 사원들이 ‘사랑’과 ‘자비’를 내세워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보호와 구휼에 적극 나섰다. 오늘날 복지 시스템은 이러한 종교적 실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약

중세 사회는 종교적 실천 덕분에 합법적인 장애인 살해 풍습은 사라졌지만, 장애인을 죄인으로 혹은 보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억압 이데올로기가 생겨난 사회였다.


3. 근현대 사회

미국의 교육학자 코프먼(James A. Kauffman)은 장애인이 처한 상태를 시대별로 구분하였다. 코프먼에 따르면, 고대 사회는 ‘말살의 시대’와 ‘조롱의 시대’였고, 중세 사회는 ‘보호수용의 시대’였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교육의 시대’, ‘직업능력개발의 시대’, ‘재활투쟁의 시대’, 그리고 ‘통합의 시대’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코프먼의 논리는 너무 기계적일 뿐 아니라 장애(인)을 대하는 주류 사회의 대책과 태도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고 있어, 현실에서는 별로 유용하지 못하다. 사실은, 오늘날 장애인들의 삶은 코프먼의 장밋빛 시대 구분과 달리 전 근대적 억압과 자본주의적 억압이라는 이중의 억압 구조에 갇혀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 잔존한 고대적 풍습들 - 서구의 장애인 살해 현장

우선, 고대 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장애인 살해가 20세기 이후에도 때론 공공연하게 때론 은밀하게 자행되고 있다. 1930년대 나찌 정권은 유대인들을 학살하기에 앞서 장애인들부터 ‘청소’하였다. 나찌 의사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정신적 장애인, 만성질환자, 중증 장애인들을 약물이나 독가스로 집단 학살했다. 처음에는 아이들만 죽였는데, 나중에는 어른들까지 죽였다. 역사학자 갤러퍼(Gallagher)는 이렇게 숨진 장애인들이 약200,000명이라고 했지만, 장애학자인 미첼(David Mitchell)은 그 수가 250,000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찌가 역사의 단죄를 받은 이후에도 장애인 학살은 계속 되었다. 독일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차우세스쿠의 아이들 Children of the decree>이 그 현장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정권 당시 의사들은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신체검사를 해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법에 따라 당국에 신고해야 했다. 그 아이들이 루마니아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이유로 강제로 집단수용소에 유기되었다. 카메라가 한 집단수용소의 방안을 비추는 순간 누구나 고대 그리스의 ‘유아 살해’ 과정을 떠올릴 수 있다. 깜깜한 방안에서 3~6살 정도의 장애 아이들이 벌거벗은 채 웅크리고 있다. 작은 방 안에는 침대가 3개 있는데, 그곳에서 25명이나 살고 있다. 아이들은 추위와 배고픔으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처럼 눈만 퀑한 모습이다. 움직일 수조차 없는 아이들은 산채로 쥐들에게 살점을 뜯겼다. 그 아이들은 살아있는 시체들이었다. 이것은 2,500년 전이 아니라 18년 전의 장면이다.

현대 사회에 잔존한 고대적 풍습들 - 우리나라의 장애인 살해 현장

이런 일은 서구 사회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한센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처참했던 ‘비토섬 사건’은 이렇게 전개되었다.

한센인을 둘러싼 가장 잔혹한 학살의 기억은 전쟁 이후 민간인들에 의한 자발적인 학살이다. 1957년 8월28일, 경남 사천시 비토섬에서 발생한 28인 학살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6·25 전란을 피해 삼천포로 내려온 한센인 40여명이 1950년 비토섬에서 남동쪽으로 3km 떨어진 경남 사천군 실안동 일대 해안에 영복농원을 세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구가 200명으로 늘었고, 한센인들은 식량난을 해결하고자 마을 앞바다에 떠 있는 섬으로 가서 개간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렇지만 정확히 8일 뒤 섬 주민들과 바다 건너 서포면 사람 300여명이 한센인들을 습격해 28명이 죽고 70명이 다쳤다. <한겨레21, 2005. 9. 2>

이 밖에도 다음과 같은 학살 사건들이 더 있었다.

ㆍ소록도 84인 학살 : 해방 직후 소록도 병원 운영권 분쟁이 일어나 환자 대표 등 84명이 죽창에 찔려 죽음.
ㆍ경남 함안 물문 학살 : 1950년 7월 관동교 부근에서 한센인 29명 을 보도연맹 등이 학살함.
ㆍ전남 목포 연동 학살 : 1949년 형무소를 탈옥한 사람들이 한 센인 마을에 들러 옷을 갈아입자, 이들을 쫓던 당국이 그 마을 한 센인 30여명을 학살함.
ㆍ강원 강릉 학살 : 1950년 강릉 시내에 있던 환자들을 굴 안에 가둔 뒤 폭탄을 던져 학살. 가해자 모름.
ㆍ낙동강변 학살 : 어린이들을 잡아먹었다며 안동 성자원에 살던 한 센인 3명을 낙동강변에서 학살함.

현대 사회에서는 이상에서 본 것과 같은 노골적이고 합법적인 장애인 살해 말고도 은밀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장애인들을 살해하고 있다. 장애 태아 낙태나 장애인 안락사가 좋은 사례들이다.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나라도 장애가 있는 태아의 인공 유산은 합법적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이른바 ‘기형아 검사’를 통해 태아에게 사소한 장애/질병이라도 있는 것이 확인되면 합법적 낙태를 허용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만 한해 150~200만 건의 낙태 시술이 자행되고 있고, 그 가운데 상당수는 산전 기형아 검사의 결과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락사도 마찬가지이다. 현행 법은 어떠한 안락사도 금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장애인이나 중증 환자에 대한 안락사가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이처럼 장애 유아를 살해하던 고대적 풍습이 현대 사회에도 존재한다는 것은 아직도 장애인은 태어나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사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현대 사회에 잔존한 중세적 풍습들

중세 사회의 장애인관 역시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최근 각 종교들은 장애인 선교에 공을 들이면서도 장애인을 사제나 승려로 받아들이는 데는 여전히 인색하다. 일례로,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박민서라는 농인이 신부 서품을 받았는데,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아시아에서 최초라고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성스러운 직책에 오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특히, 조계종의 경우 장애인의 출가를 아예 종교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조계종<승려법> 제8조를 보면, ‘금치산자, 중풍, 나병, 백치, 중성, 불구자, 난치 혹은 전염병에 걸렸거나 신체조건이 승가로서의 위신상 부적당한 자’는 사미 혹은 사미니계를 받을 수 없다고 못 박아 두고 있다. 이처럼 장애인 사제를 찾기 어려운 것은 장애가 있는 ‘불결한’ 몸으로 신성한 종교 의식을 거행해서는 안 된다는 중세적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장애가 죄의 결과 혹은 전생의 악업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사고도 아직 잔존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자식은 둔 많은 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이 이러한 편견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집안에 꼭꼭 숨겨 두어야 할 부끄러운 존재이자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새로운 억압 장치 - 시설 제도

근현대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전 전근대적 사고방식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이전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근현대 사회 특유의 장애인 통제 시스템들이 발명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시설제도’이다.

장애인 시설의 탄생은 근대 자본주의와 시민사회의 발전과 관련이 깊다. 16~17세기 무렵,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유럽 각 도시에는 ‘과부’, 고아, 장애인, 떠돌이 등 소위 ‘사회적 일탈자들’이 날로 늘어나 마침내 사회적 불안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각국 정부들은 이들을 도시로부터 추방하기 위해 ‘수용시설’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양한 ‘일탈자들’이 함께 수용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국가는 ‘노동할 수 있는 일탈자’와 ‘노동할 수 없는 일탈자’를 분류하기 시작한다. 노동할 수 있는 자들은 직업 훈련을 통해 공장으로 보내고, 장애인들처럼 노동할 수 없는 자들은 계속 시설에 남았다. 오늘날 장애인들만 시설에 남게 된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장애인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격리’하는 시설이 생겨남으로써, 현대 사회의 장애인 억압은 한층 공고해 졌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억압 장치 - 재활 이데올로기도

장애를 둘러싸고 현대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또 다른 발명품은 ‘재활 이데올로기’이다. ‘재활(rehabilitation)’이란 말은 원래 20세기 초 1차, 2차 세계대전 후 귀향한 전쟁 부상자들이 장애를 딛고 예전처럼 다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원하는 서비스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장애인이었던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하지만, 의사를 중심으로 치료사, 복지사, 그리고 교사 등으로 구성된 재활 전문가들은 일반 장애인들에게까지 재활을 강요하게 된다. 그들의 말대로 훌륭하게 재활한 장애인들은 ‘장애 극복’, ‘용기 있는 장애인’, ‘슈퍼 장애인’ 같은 찬사를 받지만, 재활에 실패하는 대다수 장애인들은 ‘의지가 약한 장애인’, ‘고집 센 장애인’, ‘구제불능’ 같은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재활이 장애인의 신체 일부를 훈련시키는 기술에서 장애인의 인격 그 자체를 판단하는 척도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의 자기결정권은 결정적으로 축소되고, 억압의 강도는 그만큼 강해진다. 여기에 대해 장애학자 올리버(Mike Oliver)는 이렇게 꼬집는다.

의사들은 태아의 장애 여부 결정에서부터 장애 노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장애인들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 그 가운데 일부 - 가령, 손상의 진단, 외상 후 안정, 질병의 치료, 재활 대책 등 - 는 물론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그들은 운전능력 측정, 휠체어 사용 지시, 급여 결정, 교육 서비스 선택, 그리고 노동 능력 측정에도 관여한다. 위의 어느 경우도 의사들이 최고의 적임자는 확증은 없다. 게다가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방문 치료사, 간호사, 심지어 교사 같은 많은 전문직들이 의사들 밑에서, 혹은 의료모형을 신봉하는 직업에 종사한다.

현대 사회에서 장애인은 더 이상 자선이나 동정의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은 특정 계층의 중요한 돈벌이 수단이자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한 물적 토대가 되었다. 그들은 재활 전문가들을 먹여 살리는 거대한 인간 산업의 주요 ‘원자재’가 된 것이다. 재활론자들이 한사코 장애인들의 삶에 개입하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것은 전 근대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풍경이다.

새로운 억압에 맞서는 장애운동

전 세계 장애인 당사자들은 근현대 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억압 장치들, 즉 시설제도와 재활전문가주의에 맞서고 있다. 1960년대 북유럽의 지적 장애인들의 통합 요구, 1970~80년대 미국 장애인들의 독립생활운동, 피플퍼스트 운동, 갈로뎃 대학 투쟁, 같은 시기 영국 장애인들의 정치적 장애운동, 그리고 2000년 이후 한국 장애운동의 대약진 등은 모두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권리를 되찾으려는 저항이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자기결정운동이다. 그 결과, 여러 나라에서 사회 통합적 실천들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이 제정되는 등 장애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의 역사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장애인 사회의 힘은 아직도 미약하고 전문가들을 비롯한 주류 사회의 장애인 통제 전략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불투명한 장애인들의 삶에, 그리고 그들의 역사에 전망과 비젼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장애운동도 동시대적으로 존재하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요약

현대 사회는 고대나 중세 사회의 장애인관을 그대로 유지ㆍ존속시키면서, 시설제도나 재활서비스와 같은 새로운 장치들을 발명하여 장애인의 삶을 이중으로 억압하고 있다. 20세기 후반기부터 시작된 장애운동은 전 지구적 이슈로 부각하고 있지만, 수천년 계속된 장애인 억압의 구조를 해체하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다. 우리가 현재와 미래의 장애운동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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