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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소통

하성준 장애인 긴급지원서비스와 자립생활


장애인 긴급지원서비스와 자립생활하성준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재활상담 석사과정)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할 때, 스웨덴의 노인지원 시스템에 관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웨덴의 시스템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라 같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와 비교한 것이다. 확실히 모든 내용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거동이 불편하고 다른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서 생활하는 노인들이 많은 스웨덴에서는 독거노인의 긴급 상황에 대한 지원을 위해 독특한 응급지원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이 시스템이 실제로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만큼이나 독거노인들의 심리적 욕구를 해소하는데 상당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지만 같은 시스템을 운영하는 일본의 경우 긴급하지 않은 호출에 대한 직원들의 불친절한 반응 때문에 심리적 욕구의 해소는 고사하고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호출에 대한 노인들의 망설임으로 인해 본래의 기능조차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의 복지제도에 관한 소개는 많았지만 우리나라에 도입되고 실시되는 제도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라 참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앞으로 갖추어가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필자에게 10년도 넘은 스웨덴의 노인복지서비스에 관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 불어 닥친 토네이도 (Tornado) 때문이었다. 오늘은 필자가 얼마 전 경험한 천재지변과 그에 대처하는 미국인들의 모습들 가운데서 생각하게 된 장애인긴급지원서비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토네이도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이는 토네이도가 우리나라에는 없는 자연현상이고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것인데다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영한사전에서 토네이도 (Tornado)를 찾아보면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자연현상으로 돌풍 혹은 선풍이라는 의미가 있고, 둘째는 1980-90년대 영국과 독일의 주력 전투기 이름이며, 끝으로 어떤 사람이나 현상이 갑자기 일어났음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된다고 나와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토네이도는 캔자스, 텍사스 및 미시시피에서 자주 일어나고 비를 동반하지 않는 돌풍으로 그 속도가 시속 150km 정도라고 한다. 필자가 경험한 토네이도는 시속 106마일 (약 시속 170km)이었는데 거의 1시간 만에 지역의 전력공급 망과 통신망을 무력화시키고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을 초래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아름드리나무가 뿌리 채 뽑히고 가옥의 파손, 전신주나 신호등의 파괴는 물론 돌출 형 옥외광고물이 떨어져 나갈 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필자가 일리노이에 살고 있는데 이번에 불어 닥친 토네이도는 이 지역에 25년 만에 발생한 것이고 토네이도가 오기 전에 약 20mm 정도의 비가 오는 바람에 그 피해가 더 컸다고 한다. 이는 비로 인해 지력 (地力)이 약해진 상태에서 강한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나무나 전신주, 신호등 같은 지상구조물들이 쉽게 뽑히거나 쓰러졌다고 한다.

 재해가 발생하게 되자 지역사회에서는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재해복구방송을 실시했는데 특이한 것은 텔레비전이 아닌 라디오가 방송의 중심이 되었다. 땅이 원채 큰 나라인 탓인지는 몰라도 텔레비전에서는 뉴스 그것도 일리노이 지역뉴스에서만 관련 기사를 다루고 타 주에서는 전혀 피해사실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물론 허리케인과 같은 초대형 자연재해가 아니었기 때문이겠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라디오를 중심으로 진행된 재해복구방송은 대부분 정보의 공유 및 전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일, 자원봉사에 대한 공지 등이 많았다. 재해복구방송을 듣던 중에 몇 가지 주목할 사실은 첫째, 전력공급이 중단되었지만 모든 병원이 외래진료를 포함하여 거의 정상적으로 운영되었고 복구가 주거지역보다는 상업 지구를 우선적으로 진행시켰다는 점, 끝으로 장애인에 대한 특별지원서비스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긴급지원에 관한 사항은 필자가 라디오를 듣다가 발견한 사실인데 몇몇 장애인들이 방송국으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방송사 측에서 도움을 줄 만한 기관으로 연결시켜 주는 내용을 직접 듣게 됨으로써 알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일찍이 탈시설화 정책에 따라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속에서 생활할 수 있게 했고 자립생활운동의 결과로 자립생활센터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보조 사업이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스템이 자연재해로 인해 일시에 무너지자 그 기능을 급속히 상실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이와 같은 놀라움은 아마도 미국이 뭔가 다를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나온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최근 자립생활에 대한 의식이 고취되고 활동보조 사업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재가중증장애인의 긴급 상황에 대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대처방안의 모색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할 때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노인긴급지원시스템은 독거노인이 생활하는 가정과 긴급지원센터 사이를 실시간 통신수단으로 연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즉, 가정에서 노인들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거나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발생했을 때, 독거노인이 쉽고 간단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는 119구급대가 하는 일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장애인긴급지원시스템은 119구급대의 업무영역을 넘어서는 개인적이고 일시적인 필요에 대한 지원이다. 예를 들어, 전화가 두절된 재해 상황에서 재가 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원조하거나 거동조차 불편한 재가 장애인이 심야에 발생할 수 있는 활동보조욕구를 해소하는 것이다. 눈이 많이 오는 북미지역에서 잊어버릴만하면 생각나는 일 중의 하나가 시각장애인이 인적이 드문 눈길에 미끄러졌을 때, 도움을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을 만큼 방치되는 사례이다. 최근 들어 이동전화의 보급이 이러한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해 주었지만 이러한 문제는 비단 시각장애인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가령 전화사용이 불편하거나 언어장애가 있는 중증장애인이 이러한 일에 직면했을 때가 좋은 예일 것이다.

 다시 이야기를 필자가 당한 사건으로 돌려보자. 토네이도가 지나간 뒤,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이 전기와 전화의 두절이었다.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아 복구될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의외로 상황이 심각해진 것은 금요일에 발생한 전력공급 및 전화 서비스 중단이 다음 주 월요일까지 지속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정전상황이 지속되자, 이동전화의 배터리가 소진되고 일반전화의 두절은 장애인과 병원 자립생활센터 및 여타의 원조기관과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활동보조가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은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에 사는 친지의 집으로 피할지 그냥 집에 머물러 있어야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친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또 이동에 불편이 없는 장애인들은 문제가 없었는지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장애인들은 할 수 없이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다. 요청을 받은 방송진행자가 곧바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을 알아보겠다고 한 뒤, 다른 내용이 방송되는 바람에 그 후의 상항에 대해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방송이 나온 것이 전력공급중단 만 4일째였으므로 도움을 청한 장애인의 고충이 얼마나 심했을 지에 관해서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긴급지원제도와 관련하여 필자는 2006년 활동보조인제도 도입을 위한 TF팀에 참여할 당시 논란이 되었던 이슈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이슈들이 대두되었지만 가장 뜨거운 이슈는 어떤 장애인들에게 얼마만큼이나 이용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었다. 어떤 장애인이냐는 문제는 본 글의 내용과의 관련성이 적어 보이므로 얼마만큼 이용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결국 한정된 예산으로 많은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운영하다 보니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중증장애인에게 이용 상의 우선권을 배정하는 것에는 쉽게 결론을 맺을 수 있었지만 몇 시간으로 제한할 것인가의 문제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이는 기존의 자립생활센터 운영자들의 실무경험과 기존 장애인단체들의 장애유형을 고려한 독특한 욕구 간의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회의가 진행되던 중에 한 참석자가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전신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의 욕구를 밤이라고 무시하고 낮이라고 해결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시간의 문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지원을 기준을 일상생활에 둘 것인지 사회적 참여에 둘 것인지에 따라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뿐만 아니라 활동보조서비스의 내용도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생각난 것은 결국 장애인의 긴급지원 시스템이 담당할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앞서 언급한 회의 참석자의 발언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립생활센터가 활동보조제도의 실질적인 주체가 된다고 할지라도 장애인종합복지관이나 장애종별 복지관들이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부분은 틈새 즉, 장애인복지관들이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주말 및 밤 시간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예로 미국은 활동보조인이 장애인과의 개인적 협의에 의해 필요한 시간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보조서비스에도 이와 같은 융통성이 얼마든지 발휘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자립생활센터들이 중증장애인 가정과 핫라인을 구축하고 해당 라인을 통해 동료상담을 비롯한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상당히 경쟁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이러한 핫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자립생활센터가 있을 수도 있고 좋은 모델이 될 만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이번에 경험한 토네이도로 인해 필자가 생각한 긴급지원 시스템에 관해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중요한 것이 ‘어떻게 핫라인을 구축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선통신 (무전기와 유사한 형태)로 구축할 수도 있고 보안이나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회사와 각 클라이언트를 연결하는 형태의 어떤 통신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또 인터넷을 이용해 메신저, 그룹대화 같은 것들도 충분히 핫라인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통신망의 구축에는 각기 장, 단점이 있다. 앞에 소개한 특별한 형태의 통신수단을 활용하는 것은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투자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그 운영과 유지에도 어느 정도 전문적인 기술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 열악한 형편에 처해 있는 자립생활센터들이 마련하기에는 쉽지 않을 정도의 비용이 소용될 것임을 고려할 때, 여러 가지 장점, 예컨대 독립된 통신수단의 마련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이점들에도 불구하고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어떤 방법의 경우 손쉽게 구축할 수 있고 별도의 관리비용이 추가로 소요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항상 컴퓨터를 중증장애인 가정에서 켜 두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생각해 보라. 긴급 상황에 처한 장애인이 한 밤중에 컴퓨터를 커고 도움을 청할 수 있겠는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전화를 이용하는 방법은 이미 이용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공부하고 있는 대학이 소재한 지역의 자립생활센터는 부설로 TRS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실제 많은 미국 내 자립생활센터에서 TRS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센터의 종사자들로 휠체어 장애인들이 일하는 경우도 있다. TRS센터는 청각 및 언어 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지원한다는 원래의 목적도 있지만 자립생활센터의 서비스를 신청하는 통로로써도 활용되고 있다.

 다음으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가’ 라는 문제가 있다. 새로운 서비스 특히 긴급지원시스템과 같은 제도의 마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이 기존의 제도나 서비스와의 중첩을 피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긴급지원시스템이 119구급대와 유사한 형태의 제도라는 생각을 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명백히 다른 것임을 먼저 밝힌다. 119구급대와 본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긴급지원시스템은 명백한 차이를 갖고 있다. 이는 운영의 목적이 다르다는 것이다. 119구조대가 교통사고나 화재, 자연재해 등 불의의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이고 긴급히 의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라면 장애인에 대한 긴급지원시스템은 일상생활을 지역사회 내에서 영위하고 있는 장애인의 긴급한 개인적, 사회적 욕구를 해소해 주기 위한 시스템이다. 이러한 욕구가 의료적인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령, 혼자서 보일러의 콘트롤러를 조작할 수 없는 장애인이 밤에 갑자기 보일러를 조작할 필요가 있다거나 갑자기 가까운 친지가 사고를 당해 부득이 장애인이 직접 외출할 필요가 있을 때, 정전, 단수 등 부정기적이고 일시적인 행사나 사고로 인해 장애인의 생활에 일시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장애인의 일상 활동이나 사회참여를 지원하는 것 등이 이 시스템의 주된 운영목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글의 서두에서 소개한 재가노인을 위한 응급호출시스템과도 차이가 있는 독특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측면에서 본 서비스를 자립생활센터의 고유기능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정된 예산으로 극히 제한된 시간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현재의 활동보조인지원서비스를 보완하고 지역사회 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증장애인이 보다 완성된 자립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바로 이 시스템이다. 물론 보다 자세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토네이도와 같은 자연재해가 아니더라도,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비장애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장애인이 아니고서는 필자가 앞서 설명한 시스템이 왜 필요한지 조차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점차로 자립생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지역사회로 나와서 생활하는 장애인이 많아지면서 긴급지원에 대한 욕구는 점점 더 커질 것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역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장애인의 사소한 욕구들은 119구급대와 같은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해소하기 어렵고 자립생활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조차도 이러한 서비스가 없는 것을 보면 보다 세심한 검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의 일시적이고 사소한 욕구들에 대한 서비스제공은 미국에서 조차 무시당하고 있다. 미국에서 운영되는 자립생활 및 장애인서비스들을 살펴보면 생명이나 안전과 직결된 것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욕구 가령 레저나 취미생활에 관한 욕구는 우선순위에서 벗어나 있다. 물론 한정된 예산으로 이루어지는 서비스에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한 불가피한 조취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레저나 취미생활과 같이 비장애인에게 사소한 어떤 것도 장애인에게는 소중하고 절실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레저나 취미생활을 경시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다음의 예는 장애인의 어떤 욕구에 대한 비장애인의 생각이 장애인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가끔 길에서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길에 내놓은 물건을 파손시키는 일이 흰 지팡이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에게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고 이런 일이 있을 때, “그냥 집에나 있지 뭐 하러 밖에 나왔는지!”라고 하는 말을 한번 정도 안 들어본 시각장애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이런 말을 들은 경험이 있고 언제부턴가 이런 말을 들으면 ‘댁은 왜 집에 안계시고 여기 있어요!’라고 혼자 생각하곤 한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쁜 의도로 했던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이 마주친 장애인이 가진 욕구를 먼저 생각한 발언은 아닐 것이다. 서비스 개발자나 제공자들은 적어도 장애인의 욕구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그 기준은 반드시 장애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긴급지원시스템을 생각한다면 더 쉽게 그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이 계단을 사용 할 수 없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도움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장애인은 레저나 취미생활과 관련해서 받은 도움일 수 있지만 다른 장애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아니 절실한 필요에 의한 외출에서 받은 도움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기초로 한 밤중에 보일러를 조작하는 것이나 정전, 단수로 인해 아주 일상적인 일에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떤 장애인에게는 필요 없는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장애인과 지역사회에서 보다 많은 시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자립생활센터가 이러한 긴급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된다면 서비스의 원래 의도를 살리고 열악한 자립생활센터의 운영을 개선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필자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유럽에서는 마실 물을 따로 사먹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황당해 했던 기억이 있다. 또 예전에는 장애인이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2009년의 한국을 보라. 생수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물을 사서 마시고 장애인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선 세상의 일도 저녁 뉴스의 기사거리도 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긴급지원서비스 역시 당장은 그게 필요할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장애인의 삶이 더 윤택해지고 보다 지역사회와 가까워질수록 그 필요는 더 증가할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장애인의 삶을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장애인의 삶에 전동휠체어가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라! 전동휠체어로 인해 장애인은 더 편리하게 외출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지하철역에는 엘리베이터와 휠체어리프트가 새로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동전화의 화상통화기능은 청각장애인이 더 이상 문자송신으로만 연락하던 단조로움을 타파했고 앞으로 그들에게 새로운 욕구를 갖게 할 것이다. 화면확대 및 화면읽기 프로그램의 보급으로 시각장애인들은 웹 접근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이러한 접근성을 지켜달라고 사회적으로 요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활동보조서비스의 시작은 오늘도 새로운 욕구를 낳을 것이고 그러한 욕구들 가운데는 일시적이고 사소해 보이지만 자립생활의 완성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어떤 것이 될 수 있는 긴급지원이 포함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현재는 장애인긴급지원서비스가 잠깐 머리를 스쳐간 황당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추후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어떤 서비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고 외국 특히 선진국에 대해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를 일을 예측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나 일본의 자립생활은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고 장애인긴급지원서비스의 구축은 다가올 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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