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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호의 장애학이야기

윤삼호 미국 실용주의, 사회학, 그리고 장애학의 발전 (下)


미국 실용주의, 사회학, 그리고 장애학의 발전 (下)개리 알브레트 씀 / 윤삼호 옮김


* 이 글은 <Disability Studies Today>에 실린 개리 알브레트(Gary Albrecht)의 논문을 요약하여 번역한 것이다. 두 차례 나누어 싣게 될 알브레트의 글을 통해 미국 장애학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 일면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운동과 정치

 졸라(Zola)의 연구에서 보았듯이, 실용주의와 사회학은 장애운동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장애인들은 공통의 경험과 유사한 세계관을 지녔기 때문에, 사회 정책과 공중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장애운동을 조직하는 건 자연스럽고 손쉬운 과정이었을 것이라는 신화가 생겨났다.

 하지만 이 같은 신화는 현실과 다르다. 미국의 경우, 장애 단체들은 원래 손상의 유형, 연령, 고용 상태, 그리고 군대 경험에 따라 설립되었다. 이를테면, 가시적 손상, 농(deafness), 소아마비, 척수 손상, 그리고 정신질환 등 장애 유형에 따라 결성된 강력한 단체들이 존재했다. 마치오브다임즈(March of Dimes)같은 단체들은 장애 청소년들에게 초점을 맞춘 반면, 직업재활국(Vocational Rehabilitation Administration)같은 조직들은 장애인들이 다시 기술을 연마하고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하였다. 또한, 보훈청(Veterans Administration)은 제대 군인들에게 치료와 재활을 지원하는 정부 기관이다. 치료, 재활, 사회 서비스, 독립생활, 환경 변경 따위를 위한 가용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 이런 조직들끼리 서로 싸우는 일도 있었다. 막후에서는, 협력보다는 경쟁이 그 당시를 지배했다는 말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1990년 미국장애인법(ADA) 제정 당시 장애인 단체들의 단결이 큰 뉴스가 되었던 것이다.

 할런 한(Harlan Hahn)은 장애 정치와 장애운동에 대한 자신의 글에서, 소수집단모형을 통해 미국장애운동을 설명하였다. 하지만 나는 실용주의와 사회학이 어떻게 장애학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장애운동을 구체화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사회적 상호작용론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드러내 보이는 자아(self)는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에 따라 다르다. 모든 장애인이 장애를 통해 자신의 역할을 정의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자면, 데블리거와 알브레트(Devlieger and Albrecht)는 정체성, 역할, 그리고 장애 문화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연구 결과, 이 두 사람은 서부 시카고 인근에 살고 있는 저소득층 장애 흑인들은 확고한 장애 정체성도 없고 장애 문화를 주장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대신, 그들은 자신을 주로 미국 흑인, 빈민, 생존자, 혹은 갱단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 장애운동이 가시적 장애를 가진 백인, 특권층, 고학력 성인들이 전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장애인들이 모든 장애인을 대변할 때, 많은 장애인들은 그들이 도대체 누구를 대표하는지 의아해 한다. 장애운동 지도자들은 공공연하게 단결과 통합을 외치지만, 과연 그곳에 가난한 장애인들, 유색인종 장애인들, 비가시적 장애인들, 그리고 지적 장애인들이 있는가? 권력은 곧 대표권이다. 만일 장애운동이 일부 장애인들만 대표한다면, 다른 장애인들은 목소리를 갖지 못할 것이다.

 또한, 상징적 상호작용론자들은 공유된 기대와 규칙을 통해 사회생활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주로 특정 장애나 이슈를 중심으로 조직된 장애운동 구성원들은 다른 장애 단체들과 경쟁을 하였으며 자신의 장애 혹은 관점을 공유하지 않은 장애인들을 배제시켰다. 그 결과, 이들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으며 다수 장애인을 포괄하지도 못했다. 어빙 고프먼(Irving Goffman)은 극적인 은유를 사용하여 잠재적으로 분열적인 상호작용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사람들이 채택하는 동일한 행동(aligning actions)을 연구하였다. 고프먼을 비롯한 상징적 상호작용론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공통의 정체성과 근거(cause)를 찾는 것, 외부 세력에 대항하여 조직화하는 것,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포함시키는 것, 조직의 표지(signs)ㆍ심벌ㆍ문화를 개발하는 것, 단일 대오를 형성하는 것,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감해지는 것은 집단을 통합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들이다. 공중의 태도, 법률, 그리고 접근할 수 있는 환경과 독립생활에서 밝혔듯이, 이런 행동들은 십중팔구 사회변화를 생산하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서로 협력하여 세력을 모으고 공통의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장애 단체들이 인정할 때, 장애 단체들은 에너지를 결집시킬 수 있고, 공통의 계획을 수립할 수 있고, 정치적 행동을 취할 수 있고, 여론을 바꿀 수 있고, 성공적으로 ADA를 뒷받침할 수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론에 따르면, 내부 경쟁을 통제하고 성공적인 전략을 수행할 공유된 기대와 규칙을 채택한 장애운동 지도자들은 여론을 환기시키고 ADA를 통과시키기 위해 시민권모형을 개발하였다. 장애운동에서 이 같은 단체들 사이의 연대는 공유된 표지ㆍ심벌ㆍ장애 문화의 발전을 통해 강화되었다. 장애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살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장애를 주목할 가치가 있는 사회적 문제로 구성하기 위한 공유되고 보편적인 하나의 경험이 바로 장애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전략들이 열정적인 장애운동을 생산하고 강화하는데 겹쳐있다.

미국적 가치와 장애의 정치경제학

 미국의 장애 연구는 주로 개인, 가족, 혹은 집단을 분석 단위로 삼았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이 같은 분석 유형에 잘 어울리는 사회 심리학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장애를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관점으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알브레트와 베리(Albrecht and Bury)는 사회적 장애 정의, 장애에 대한 반응의 조직화, 그리고 장애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사회적 구성론과 정치경제학적 관점을 사용하여 이 같은 수준에서 분석하였다.

 고든과 로센블럼(Gordon and Rosenblum)은 사회학자들〔즉, 사회적 상호작용론자들〕이 장애의 사회적 구성론 모형을 발전시키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제약, 의료화, 진단, 개인의 조정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전통적’ 혹은 ‘개인적’ 방식으로 장애의 틀을 만드는 것”을 지속시키는데도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이 두 사람이 에 발표된 논문 510편을 분석한 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분석 결과, 이 두 사람은 조사한 논문 가운데 “아주 적은 비율”인 17%만이 장애의 사회적 구성을 제시하였음을 알아냈다.

 〔하지만〕이 연구는, 첫째 만 근거 자료로 삼았고, 둘째 논문 510편 가운데 17%는 하찮은 수치가 아니며, 셋째 이 연구는 수많은 주요 문헌들을 간과하고 있다. 고든과 로센블럼의 포괄적인 비판은 정당한 주장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과장하고 사회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연구가 가진 힘을 간과함으로써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초반 중요한 문헌 두 권이 장애의 사회적 구성을 직접 제시했다. 올리버(Oliver)는 (1990)에서 장애의 사회적, 문화적 생산을 핵심적으로 주장했고, 알브레트(Albrecht)의 (1992)는 사회적 문제로서 장애의 사회적 구성과 제도적(institutional) 반응으로서 재활 산업의 발전에 관한 분석에 기여하였다. 장애 연구에서 지배적 주제까지는 아니었을지라도 장애의 사회적 구성에 기초한 연구, 장애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장애 시장에 관한 분석은 우리가 장애를 사회적, 구조적으로 이해라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장애의 사회적 구성과 제도의 정치경제학은 연구 대상이 되는 특정 사회의 가치, 이해관계, 그리고 맥락을 조건으로 한다. 따라서 미국에서 장애를 이해하려면 미국적 가치와 이데올로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장애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방식과, 정의된 사회 문제에 대한 제도적/정치경제학적 반응이 조직되는 방식에 이런 가치와 이데올로기가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험악한 개인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문화라는 핵심 가치가 수백년 동안 뚜렷하게 지속되어 왔다. 유럽 각국 역시 민주적 가치를 신봉하고 있지만, 미국과 달리 대개 욕구를 가진 자들(those in need)에게 더 관대하고, 더 포괄적이고 완전한 보건복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실업자, 빈민, 여성, 어린이, 장애인처럼 욕구를 가진 자들에게 유용한 소득 분배와 서비스의 차이가 덜 극단적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험악한 개인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장애가 정의되는 방식과 공유한 제도적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장애는 전형적으로 장애인이 감당해야 할 개인의 문제로 묘사된다. 장애인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군인, 운수 노동자, 정부 고용자처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을 보호하는데 집중하며, 때론 직장 복귀를 목표로 삼는다. 공적 영역이든 사적 영역이든, 재활 관련 재화나 서비스는 사고 팔 수 있는 상품들이다. 장애는 장애인을 돕고 돈을 버는 것이 주목적인 자본시장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로 구성된 수십만 달러 사업의 한 가운데 놓여 있다. 이 이해관계자 집단에는 보건 및 의료 전문가, 병원, 치료 사업 및 재택 돌봄 기관, 요양 및 생활시설, 제약ㆍ의료 지원 및 기술 산업과 보험 회사, 장애 전문 건축 건축회사ㆍ법률회사ㆍ은행ㆍ회계사무소, 정부와 로비 단체, 정치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비자가 포함된다. 이런 환경에서, 소비자/장애인은 파워가 가장 작은 이해관계자이다.

 미국에 대한 이 같은 정치경제학적 분석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관리된 돌봄, 전문적 의료의 배분, 정의 과정, 그리고 사회 정책에 관한 미국적 모형은 다국적 기업과〔미국〕정부의 정책을 통해 전 세계로 수출되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특정인의 지위와 인지된 가치를 조건으로 하는 장애 정의와 장애에 대한 반응을 미국 사회에 강제하였기 때문에, 이 같은 강제력은 이미 글로벌 사업이 된 보건, 인간 서비스, 그리고 장애라는 국제적 분야에서도 작동할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은 우리가 가치, 정치경제학, 그리고 물리적ㆍ사회적 환경이 우리가 어떻게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처우를 이해하고 이에 가장 잘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도록 도와주는지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된다.

미국 예외주의와 장애학의 미래

 앞서 살펴보았듯이, 미국 장애학은 실용주의, 양적ㆍ상징적 상호작용론과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포함한 사회학, 그리고 장애학이 미국에서 성장한 특정 맥락에 의해 형성되었다. 아울러, 미국 장애학은 대체로 보면 역사적 감수성이 부족하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편협하다는 특징이 있었다. 마침내 장애학에 대한 역사적 배경에 관한 필요한 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이 같은 연구가 더 많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반즈(Barnes)는 린튼(Linton)의 최근 저서 에 대해 논의하면서 두 가지 혼란스러운 경향을 적절하게 지적한다. 반즈는 린튼이 예로 든 장애 학자들이 주로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논문에서 깊이 있는 역사적 천착을 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연구 성과를 주의 깊게 읽지도 않기 때문이다. 반즈의 주장을 들어보면, “하지만 최근 북미에서 나온 저술들의 경우 새로 부상하는 ‘장애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대서양 양안, 실제로는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발전한 성과물들을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 말은 자주 인용되는 데, 그 까닭은 학자들이 새롭고 여러 학문에 걸친 분야에서 연구할 때 근시안을 가지기 쉽기 때문이다. 장애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성숙해지고 운동 세계에서 믿음을 얻으려면, 장애 역사를 연구하고 경계와 학문을 넘나드는 관점과 연구에 열려 있는 장애학을 요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보면, 장애 정의와 장애 대표성에 관한 공유된 담론과 논의 분야, 다양한 지적 견해와 다른 사람의 경험에 대한 존중, 학문으로서 장애학의 비전, 그리고 이론과 연구가 실천으로 효과를 발생시키는 방법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타인에 대한 개방성과 존중이다. 장애학은 계속 진화하고 있는 지적 전통과 문화적 환경의 산물이다. 학자, 정책 입안자, 활동가들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단층선(fault lines), 이슈, 이론에 관한 각 담론에 참여하고 장애학을 현실 세계에 접목시킬 때 장애학은 성숙할 것이다. 서로 대화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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