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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호의 장애학이야기

윤삼호 페미니즘 이론과 장애학의 접점들


페미니즘 이론과 장애학의 접점들윤삼호 /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부소장


“사람은 여자〔또는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 시몬느 드 보봐르

“장애인〔또는 여성〕은 ‘같을 수 있는 권리’뿐 아니라 ‘다를 수 있는 권리’도 함께 가지고 있다.”
- 제니 모리스


 하나의 정체성 집단으로서 여성과 장애인은 서로 닮은 점이 많다. 두 집단을 분석하는 학문과 이론의 접근법이 닮았고, 두 집단의 속성과 억압 기제를 분석하는 방법론도 닮았다. 이는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과 장애인이 ‘단지’ 생물학적 신체 조건의 다름 때문에 남성의 타자 또는 비장애인의 타자로 살아온 경험이나 정조가 서로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은 소수자 이론으로서의 페미니즘 이론들이 주장하는 몇몇 명제들과 장애학의 명제들을 비교하고 그 접합점들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소수자 학문의 접근법

 Ritzer의 주장을 들어 보면, 페미니즘 이론은 ①여성의 처지와 경험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고 ②여성의 독특한 관점에서 세계를 보며 ③여성을 위해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고자 하며, 궁극적으로는 인류를 위해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리고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①사회학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 학문까지도 아우르는 ‘학제간 연구’를 해야 하고 ②페미니즘 학자들의 발견들을 학문적으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보편적 세계의 변화까지도 추구해야 하는 ‘이중의 의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Ritzer, 311)

 이와 같은 페미니즘 이론의 특성은 그 대상만 다를 뿐 장애학(Disability Studies)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가령, 장애학은 페미니즘 이론처럼 학제간 연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영국의 장애학자 Johnstone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장애학은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철학, 사회학, 심리학, 역사학, 장애인의 경험 등 다양한 학문의 영향을 받는다. 이런 요소들의 기능적ㆍ이론적 관계를 통해 개인의 장애 정체성과 공동체의 장애정치를 정의하는 우리의 이해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장애학은 장애문화와 사회정의를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Johnstone, p11).


 연구의 대상과 관점, 그리고 접근법 역시 페미니즘 이론과 장애학은 매우 유사하다. 두 이론 모두 당사자가 연구를 주도해야 하고 당사자의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장애연구의 패러다임은 장애인을 의사결정자이자 모든 연구의 핵심으로 본다. 이 패러다임은 ... 장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연구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 연구공동체의 주류인 비장애인 연구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연구자는 외부이론이나 사회ㆍ정치운동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Johnstone, p179~180).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이론과 장애학 둘 다 소수자 이론/학문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편적인 인간이해 또는 인간해방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같다.

장애학은 이런 관심사를 제기하기 위해 스스로 비판적인 용어법을 발전시켜 왔으며, 주류 과학의 실천과 해석에 대항할 수 있는 인식론을 제시한다.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학문인 장애학은 비판과 조사를 통해 장애해방의 기회를 약속할 뿐만 아니라 인간 행동과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통찰력과 틀을 제시한다.(Johnstone, p254)


여성과 장애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실존주의적 성향의 페미니스트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1949년 <제2의 성>에서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진다(One is not born a woman, one becomes one)”라고 주장했는데, 이 말은 지금까지도 페미니즘의 핵심 명제로 남아 있다. 이 명제에는 여러 함의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핵심은 여성이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임을 천명한 것이다. 기존 생물학은 여자-남자의 생리적 차이를 본질적인 차이라고 보기 때문에 성에 따른 역할의 차등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와 달리 보부아르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거부하고 여성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가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장애인을 사회적 맥락에서 정의하는 장애학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이를 테면, 영국의 장애인 단체 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이하 UPIAS)은 1976년에 ‘Fundamental Principles of Disability’를 발표했는데, 여기에 장애인 당사자들이 장애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손상(impairment) - 사지의 전체 혹은 일부가 없는 것, 혹은 사지, 기관, 신체 메커니즘 등에 결함이 있는 것을 강조함. 다시 말해, 손상은 개인적인 것을 강조함.
장애(disability) - 신체 손상을 입은 사람의 책임은 거의 혹은 전혀 없음에도 그들을 사회 활동의 주류로부터 배제시키는 동시대 사회 조직에 의한 불이익이나 활동의 제약을 강조함(UPIAS, p65).


 이는 (사회학적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장애를 분류한 WHO의 장애 정의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 진영의 최초의 반격이었다. UPIAS가 장애 정의를 제시하기 직전에 국제적 의료집단이 주도하는 WHO는 손상을 “정신적, 육체적 혹은 해부학적 구조나 기능의 상실이나 비정상”으로 정의하고, 장애를 “(손상 때문에) 한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방법이나 범위에서 행위를 할 능력을 제약받거나 상실한 것”으로 정의하였던 것이다. 의료집단은 장애를 신체 손상으로 인한 기능 제약으로 보는 반면에 장애인 당사자들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시설에 격리하고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고 고용에서 배제하기 때문에 사회에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체적 장애는 질병으로 인한 제약이 아니라 환경과 사회의 억압인 셈이다. 페미니즘 이론이 여성의 생물학적 환원론을 거부하는 것처럼 장애학은 장애의 의료적 환원론을 반대하는 것이다. 영국의 1세대 장애학자이자 당사자인 Oliver는 이 같은 장애 정의를 ‘차이의 정치(the poloitics of difference)’ 개념으로 확장하였는데, 이 개념은 지금까지도 장애학에서 중요하게 인용되고 있다.

‘타자’, ‘타자성’, ‘타자화’의 문제

 ‘타자(other)’은 원래 구조주의 인류학자인 레비나스가 서양 사회사회 자신의 문명을 기준으로 다른 문명들을 경시하고 식민화하는 경향을 두고 쓴 개념이다. 그 뒤 이 개념은 페미니즘 이론 등 소수자 집단의 해방을 도모하는 각종 이론에 접목되어 발전되고 있다. 특히, 보부아르는 여성이 남성의 ‘타자(other)’가 된다는 의미로 여성을 ‘제2의 성’이라 불렀다. 달리 말하면, 세상과 인식의 주체는 남성(‘제1의 성’)이고 여성(‘제2의 성’)은 타자/대상으로만 위치지워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주체는 타자를 통해 구성되고 타자는 주체에 의해 드러나는데, 이 같은 타자의 속성을 Jordanova는 ‘타자성(otherness)’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타자성은 우리가, 때론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집단과 개인이 서로를 멀리하는 방식을 사고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분리 도구는 양쪽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을 때에만 소용이 있다. 따라서 타자성은 구분되면서도 서로 연관된 인간 범주들 사이의 유사성, 감응, 그리고 반감을 전달한다(Shakespeare, p290).


 여기에 대해 장애학자들은 페미니즘 이론에서 주장하는 타자 개념이 장애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몸의 역할, 자연스러움의 역할, 그리고 여자가 몸과 자연스러움으로 정의되고 그 결과 타자로 정의되는 방식에 대한 이런 언급들은 장애를 이해하는데도 아주 중요하다. 앞서 설명한〔페미니즘〕주장에서 ‘여자’를 ‘장애인’으로 바꾸더라도, 그 분석의 근본적 의미는 남게 될 것이다. 드 보봐르가 여자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장애인들 역시 자연스러움에 연루되고, 제약이 따르는 몸의 증거로서 특이한 외모를 가지고 있고, 끊임없이 죽음을 연상시키는 존재로서 지위를 가진 탓에 타자로 간주된다(Shakespeare, 295).


 한편 페미니즘 이론의 일종인 교차성 이론(intersectionality theory)은 여성을 억압하는 수많은 사회적 불평등 배열들 - 젠더, 인종, 계급, 연령 등 - 의 다양한 교차, 즉 “억압과 특권의 벡터”에 의해 위계적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테면, 여성-흑인-블루칼라-고령의 배열에 속한 여성은 백인 여성이나 흑인 남성에 비해 더 심한 억압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Anzaldua는 이를 “피지배집단 내부에서 어떤 기준에 따라 특정한 구성원을 타자로 규정하는 행위를 ‘타자화(othering)’”로 정의하고, 이 같은 규정 행위는 피지배 집단의 “연대와 저항의 잠재력을 잠식한다”고 주장한다”(Ritzer, p343~134).

 장애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 있다. 장애인 사회에도 페미니즘 이론에서 말하는 “억압과 특권의 벡터”를 적용하면, 경증 장애여성이나 중증 장애남성보다 여성-중증-지적 장애의 배열에 속한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억압이 훨씬 더 심하다.

〔장애학이 주장하는〕사회모형(social model)은 모든 장애인의 경험을 포함함으로써 장애인 분리에 반대한다. 지적 장애인을 빼고 신체적 장애인에게만 사회모형을 적용하는 것은 페미니즘 연구는 백인 여자에게만 적용된다, 여러 페미니즘 저술 속에서 흑인 여자의 경험이 무시당한 것은 가부장제가 그들에게 아무런 해석력도 부여하지 않은 탓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Chappell, p73).


소수자도 소수자-되기를 해야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페미니즘 이론과 장애학은 여러모로 서로 닮은 데가 많다. 보부아르의 명제를 “사람은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으로 만들어진다”로 바꿔 놓아도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는 여성과 장애인의 삶의 경험에서 공통분모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집단의 경험이 서로 겹치지 않거나 심지는 상반되는 경우들도 있다. 예를 들면, 여성이나 흑인에게는 ‘기회의 평등’만 보장하더라도 어느 정도 차별을 해소할 수 있지만, 장애인에게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필요한 지원대책들 - 적극적 조치의무, 편의시설 제공 등 - 도 함께 제공해야 실질적인 평등이 실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똑같이 생산적이다’라고 외칠 때 장애인들은 ‘복지지출을 확대하라’며 비생산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여성들은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다행이다’라고 말할 수 있고, 흑인들은 ‘흑인은 아름답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장애인들도 대개의 경우 이런 주장을 낯설어 한다.

 이 같은 차이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보더라도 여성운동과 장애운동이 연대하는 풍경은 보기 어렵다는 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 페미니즘과 장애학 이론, 그리고 운동은 그 깊이와 폭을 넓혀 가야할 것이다. 소수자 이론/운동의 목표가 단순히 소수자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현존 사회들의 억압의 층위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결국 인류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들 - 가령, 자유, 평등, 민주주의, 인간해방 등 - 을 진전시키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Deleuze가 말했듯이 ‘소수자도 소수자-되기’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소수적인 것’을 되기 혹은 과정과 혼동하고, ‘소수’를 집합 혹은 상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유태인, 집시 등은 이러저러한 조건 내에서 소수를 형성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되기를 이루기에는 아직 충분치 않다. ... 흑표범 당원들(Black Panthers)은 흑인들도 흑인-되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들도 여성-되기를 해야 한다. 유태인도 유태인-되기를 해야 한다. 상황이 이와 같다면, 유태인-되기는 유태인만큼이나 비유태인도 필연적으로 변양(變樣)시킨다. 여성-되기는 여성만큼이나 남성도 필연적으로 변양시킨다(Deleuze, p67).


<참고 문헌>
- Chappell. 윤삼호 옮김. 2006.「정상화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장애학 과거·현재·미래>. p73. 대구DPI
- Deleuze. 이진경 외 옮김. 2000.「천의 고원」제2권(미간행)
- Johnstone. 윤삼호 옮김. 2006.「장애학개론」. 대구DPI
- Oliver. 1996.「Understanding Disability: From Theory to Practice. Basingstoke」. Macmillan.
- Ritzer, 한국이론사회학회 옮김. 2008.「현대 사회학 이론과 그 고전적 뿌리」. 현암사
- Shakespeare. 윤삼호 옮김. 2006.「장애인에 대한 문화적 표현들」. <장애학 과거·현재·미래>. 대구DPI
- UPIAS. 1976.「Fundamental Principles of Disability」. London: 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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