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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소통

김경훈 변화를 읽는 네 가지 개념


변화를 읽는 네 가지 개념김경훈 (한국트랜드연구소 소장)


 변화를 쫓아갈 것인가, 변화를 창조할 것인가?
 물론 누구나 변화를 창조하는 대열에 서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변화를 읽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한 우리는 늘 누군가의 뒤에 설 수 밖에 없다. 20세기의 한국은 스스로 변화를 읽지 못하더라도 앞서간 나라들의 앞선 고민의 결과들을 진보든 보수든 간에 잘도 흡수해왔는데, 덕분에 압축적인 성장을 했지만 우리 스스로의 사고의 틀을 세우는 데는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21세기도 9년이나 진행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 변화를 읽고 미래의 방향을 세워나갈 능력이 절실하다. 여전히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학자, 기업가, 정치인에게 한국의 갈 길을 묻고 찾는 이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영원히 추종자 이상이 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수많은 변화가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뭉뚱그려 ‘변화’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변화의 진실을 놓치고 만다. 겉으로 잔잔해 보이는 바다에도 파도의 포말과 같은 순간적인 변화가 있고 수억 년을 지속해 온 밀물과 썰물이 있으며 바다 밑에 해류라고 하는 길이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즉 변화에도 표면의 현상이 있고, 그 이면의 층위와 깊이와 넓이가 다른 다양한 움직임들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변화를 읽고 앞서 나가며 변화를 창조하려면 먼저 바로 그 변화의 다양한 현상들을 이해하고 포착하는 개념적 틀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그래서 그 변화의 다양한 층위들을 구분하는 개념어들을 다루고자 한다. 이 개념들은 각각 표면과 그 이면의 변화들을 구분하는 틀이 된다. 그리고 이 틀은 한국 사회가 앞으로 당면하게 될 문제들을 파악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1. 유행-파도의 포말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변화의 함정이 바로 유행이라는 현상이다. 우리는 유행만을 보고서 ‘정신없는 변화’ 운운한다.
 예컨대 바보 같은 짓 따라 하기라고 부를 만한 ‘플래시 몹(Flash Mob: 휴대폰이나 이메일로 연락된 불특정 다수가 특정한 장소에 모여, 짧고 의미 없는 행동을 하고 사라지는 놀이)’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난 2003년 여름, 미국에서 처음 플래시 몹이 벌어지자 이 이야기는 순식간에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2003년 가을에는 서울 명동에서 젊은이들의 플래시 몹 행사가 있었고, 물론 여기저기서 뉴스를 탔다. 사람들은 이 흥미로운 이벤트에 대단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 이벤트를 하는 젊은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위해 온갖 분석도구를 들이댔다.
 하지만 플래시 몹은 그걸로 끝이었다. 젊은이들은 곧 시들해졌다. 바보 같은 짓 따라 하기는 그저 한두 번 해보는 이벤트일 뿐이다. 최근의 플래시 몹은 ‘여성폭력 추방을 촉구하는 플래시 몹’, ‘서울시의 정책을 비난하는 플래시 몹’, ‘3.1절 의미 다지는 플래시 몹’, ‘학교 폭력에 대한 정부정책 반대 플래시 몹’과 같은 것들이다. 바보 같은 짓을 하던 젊은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러니까 애초의 플래시 몹은 유행이고 패드(fad,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쏠림현상)였던 것이다. 그것은 다만 일시적 유행에 지나지 않았고, 껍질만 남아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유행은 생명력이라는 좌표에서 가장 짧은 변화 현상이다. 오늘은 이효리의 춤에서 관능적인 섹시미를 찾다가, 내일은 보아의 청순한 섹시미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 유행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유행의 이면에 숨어있을 보다 장기적인 변화의 동기를 찾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워낙 돌발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다음 유행을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생겨난 유행의 이면에는 때로 긴 변화의 징후가 숨어있을 수 있다. 지난 2007년 필자는 미국의 트위터와 같은 단문 블로그의 출현을 조사하면서 이것이 잘게 쪼개진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스트레스에 지친 우리들의 감성적 필요에 힘입어, 단순한 유행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생명력이 긴 트렌드가 될 것임을 예측한 바 있다. 2008년 초 출간한 [핫트렌드 40]에서는 ‘마이크로 블로깅’이라는 트렌드로 명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 2009년의 세계에서는 트위터 신드롬이라고 부를만한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물론 이 신드롬에서 한국은 좀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유행이라는 변화 현상은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 유럽의 트렌드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호르크스는 그의 책에서 ‘일시적 유행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돌연 솟아오르는 폭죽과 같은 것이며, 그것이 화려한 불꽃놀이가 될지 불발탄이 될지는 쏘는 사람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행은 보고 즐기고 그 안에 보다 생명력이 긴 변화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는, 대상으로서의 변화 현상이다. 유행에 한 눈을 팔다가는 진짜 변화를 찾지 못할 것이다.

2. 경기변동과 전망-가능성 높은 미래 시나리오

 경기 및 경제 변동 역시 변화에 대한 개념이다. 그리고 아주 피부에 와 닿는 변화다. 우리는 생애에 걸쳐 여러 번 호황과 불황의 경기/경제 변동을 경험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내적 모순에 의해 주기적으로 공황에 직면한다고 주장했다. 인류는 실제로 대공황을 맞아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기도 했다. 그 후 공황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주기적으로 경제가 상승하기도 하고, 하강하기도 해서 경기순환론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경제는 일정한 주기로 순환의 형태를 띠지 않아 경제순환이 아니라 경제변동이라고 부른다.
 경제변동의 시기와 주기는 예측하기가 무척 어렵다. 지난번 사이클이 10년의 순환주기를 가졌다고 해도, 이번 주기는 20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변동 예측은 대개 ‘조건부 전망’의 형태를 띠게 마련이고, 틀렸다 해도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렵다. 또 경제변동의 원인도 상황에 따라 다른 변수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경기/경제 변동은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늘 예측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예측은 흔히 ‘전망’, 혹은 ‘대전망’-둘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명망 높은 경제연구소나 경제 잡지는 해마다 경기/경제 예측서를 낸다. 그중에서도 1843년에 영국에서 창간된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의 ‘The World in∼’ 시리즈는 매년 새해의 정치·경제 전망을 내놓는 책으로 유명하다. 이를 본받아 한국의 삼성경제연구소도 ‘SERI 전망~’이라는 책을 매년 발간하고 있다.
 그러나 전망은 그들 스스로도 민망할 만큼 자주 틀린다. 오죽하면 이코노미스트 스스로 ‘경제 예측은 거의 쓸모가 없을뿐더러 장기적으로 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정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틀린 예측자료를 근거로 잘못된 장기정책을 수립하는 예가 너무나 많다.’고 지적하고 있을까?
 전망이 틀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너무 뻔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전망은 미래에 대해 내놓을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 중에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를 선택한 것이다. 당연히 날씨 변화에 대한 기상청 예보처럼 불확실성이 포함되어 있다. 미래의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는 아주 많고, 그 많은 변수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주 짧은 시기는 그런대로 확률이 높지만, 기간이 길어질수록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그러므로 전망은 어디까지나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3. 트렌드, 메가트렌드-생명력이 긴 변화

 유행이나 전망과 다르게 ‘트렌드’라고 불리는 변화는 이미 시작된 변화이자 약 10여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 생로병사의 주기를 갖는 필연적인 쏠림현상이다. 2009년이라는 시점을 칼로 잘라보면 어떤 트렌드는 생명력이 다해 사그라져가고, 어떤 것은 지금 한창이며 또 어떤 트렌드는 이제 막 세상에 출현해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있다. 변화의 종류로 볼 때 유행보다는 길고 논리적 맥락을 가지기 때문에 예측의 가능성이 훨씬 높고, 10여년 이상의 생명력이 있으므로 예측을 통해 우리가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 변화 현상이다. 따라서 트렌드라는 변화는 포착만 빨리 할 수 있다면 실용성이 대단히 높다.
 트렌드들 가운데 특정한 나라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전염되는 것을 메가트렌드라고 부른다.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라는 미국학자는 1984년에 『메가트렌드 Megatrends』라는 책을 내놓았다. 당시 그의 관찰에 따르면 지구촌을 이끌어 나갈 메가트렌드는 잘사는 나라만이 아니라 못사는 나라도 영향권 아래 있으며, 그 변화의 기간은 대략 50년 정도라고 한다. 고령화나 도시화, 글로벌화와 같은 변화들이 메가트렌드에 해당된다. 메가트렌드는 북한처럼 고립되는 길을 택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나라나 민족도 피해갈 수 없는 세계적 변화다. 하지만 메가트렌드도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 그 나라, 그 민족의 가치관, 법과 제도, 역사적 전통과 관습 등에 의해 변형된다. 즉 같은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더라도 미국 다르고, 일본 다르며 한국이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메가트렌드는 그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변화의 실제적 양상을 그 문화권 안에서 지속적으로 추적해야 할 필요가 있다.

4. 자연과 문명-느리지만 아주 강력한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을 정도의 변화는 아니지만 우리 삶의 밑바탕에 조용히 흐르고 있는 변화들이 있다. 바로 자연의 변화와 문명이다. 앞에서 열거한 그 모든 변화의 개념들도 사실 자연과 문명이라는 두 변화 위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인형들이다.
 자연의 진화는 가장 긴 시간의 주기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 느리다. 한 사람의 인생주기 정도로는 변화를 거의 느낄 수 없다.
 고대 아프리카 북부지방에는 거대한 사바나 초원지대가 있었다. 이 지역에 기후변동이 일어나면서 사막화가 시작되었는데, 이 때문에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나일강 유역으로 몰려들어 고대 이집트문명을 발전시켰다(B.C 6000년경). 이 사막지역은 점점 크기를 넓혀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큰 모래지대인 사하라사막이 되었다. 자연의 진화는 이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어떤 변화보다 뚜렷한 결과를 남기지만, 인간의 시간감각으로는 그 영향을 깨닫기가 어렵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늘날 우리는 몇 가지 자연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 중 임을 알고 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일어나는 주목할 만한 자연의 변화는 인간이 저지른 행위의 보답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햇빛 감소현상’이 그러하다. ‘저녁식탁에 커다란 고릴라가 앉아 있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하는 기후학자도 있다. 그만큼 햇빛 감소의 진행속도는 놀라운데, 지난 50년간 약 10%의 햇빛이 감소했다고 한다. 특히 홍콩은 37%나 감소했다. 물론 이것은 태양빛이 어두워진 것이 아니라 대기오염 등으로 지표면에 도착하는 햇빛의 양이 줄어든 것이다. 만일 대기오염이 개선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구가 어두워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1년에 맑은 햇빛을 쬘 수 있는 날이 한 달을 넘지 못한다면, 그런 날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인류의 피부가 햇빛을 받지 못하고, 농작물이 햇빛 부족으로 시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자연의 변화는 느리지만, 변하기 시작하면 워낙 대규모 변동을 초래하기 때문에 우리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한편 문명은 수천 년 동안 지속된 농업문명이나 19세기 이후 200여 년 동안 유지된 산업문명처럼 주기가 일정치는 않지만, 최소한 몇 년 안에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운이 좋다면(?) 우리의 생애주기에서 문명의 변화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 동의한다면, 현재 우리는 그 변화의 한복판에 있는 셈이다. 혹은 피터 드러커가 말한 ‘지식자본주의 시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서 있을 수도 있다. 생명공학이나 나노공학, 양자역학 같은 혁명적 기술의 출현으로, 이후 몇 십 년 동안 상상을 뛰어넘는 혁명적 문명 변화의 과도기를 살아갈 수도 있다.

변화의 진실을 추적하자

 간단하게 유행, 경기변동과 전망, 트렌드와 메가트렌드, 자연의 진화와 문명이라는 변화의 개념적 틀에 대해 살펴보았다. 유행이 바다의 표면인 파도라면 트렌드나 메가트렌드는 큰 바다 밑 해류에 해당하며 자연이나 문명은 그런 해류까지도 담는 큰 패러다임적 틀이다. 우리는 눈을 속이고 호기심을 이끄는 변화의 함정에 속지 말고 생명력이 긴 진정한 변화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변화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어야만 그 변화 속에서 정작 우리가 그려내고 싶은 변화를 창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경영은 기업이든 대학이든, 그리고 병원이든 간에 오늘의 긴박한 뉴스 타이틀에 구애됨이 없이 지속될, 기본적이고 예측 가능한 추세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기본적인 추세들이 모여 다음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 피터 드러커, 『넥스트 소사이어티 Next Society』 중에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먼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부터 파악해야 한다. 미래는 우리가 되고 싶은 그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그것의 모습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를 창조하고 싶다면 먼저 변화를 제대로 읽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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