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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호의 장애학 이야기
 장애 - 구성된 것인가?, 창조된 것인가? :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모니터링 센터 윤삼호 소장

장애 - 구성된 것인가?, 창조된 것인가?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모니터링센터 윤삼호 소장



  1980년 WHO(국제보건기구)는 장애 분류표 ICIDH(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Impairments Disabilities and Handicaps)를 발표한다. ICIDH는 장애를 ‘손상(impairment)’, ‘장애(disability)’, ‘핸디캡(handicap)’ 세 단계로 계층화한다. 여기서 손상은 ‘신체적 혹은 해부학적 구조나 기능의 상실이나 비정상’이고, 장애는 ‘손상으로 인한 행위 능력의 제약이나 상실’이고, 핸디캡은 ‘손상이나 장애로 인한 개인의 사회ㆍ문화적 불이익’으로 요약할 수 있다.

  WHO의 입장에서 보면, 손상이 장애로 이어져 장애인의 핸디캡을 유발하기에 결국 장애는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손상 때문에 생겨난 생물학적 현상인 셈이다. WHO가 이 같은 논리를 제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WHO는 국제적 의료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이 기구가 누구의 이익을 대표하겠는가? 이들이 장애의 원인을 손상에서 찾는다는 건, 다시 말해 손상을 의학적으로 치유하여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당연히, 장애운동가들과 장애이론가들은 WHO의 장애 인과론에 반발했다. 의료전문가들의 논리대로라면 장애인의 삶 전체가 의료전문가들의 손에 좌지우지될 수 있으며, 이는 곧 장애인의 주체적이고 동등한 삶의 권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0년대 이후 장애이론가들은 장애의 원인을 손상이 아닌 사회에서 찾으려는 지적 탐구를 시작했다. 그 후, 이들이 제시한 장애 인과론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장애 창조론이고 나머지 하나는 장애 구성론이다.


  장애 창조론

  창조론은 장애가 특정 집단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창조되었다는 논리이다. 이들의 논리를 따르면, 장애인은 구체적인 하나의 집단으로 실존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영국의 1세대 장애학자인 핀켈스타인(V. Finkelstein)이다. 핀켈스타인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태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연구한 한 1980년 논문에서, 장애는 서구 산업사회 발전의 직접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물론적 분석을 통해 장애인의 역사를 3단계로 구분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1단계는 대략 유럽의 산업화 이전인 중세에 해당된다. 이 시기 장애인들은 경제적으로 최하층이었고 “병신(cripples)”이라 불리며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계층이었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공동체에서 축출되지는 않았다. 당시 경제 활동은 농업이나 가내공업에 기초했기에 장애인들도 어느 정도 노동에 참여할 수 있었고, 오늘날처럼 특별한 치료나 서비스의 대상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사회적 역할도 고정되지 않고 아주 중층적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무렵에 해당하는 2단계에서는, 산업화가 진행되고 장애인들은 노동 시스템에 기초한 새로운 공장에 보조를 맞출 수 없다는 이유로 고용에서 배제되었다. 이 시기에는 비장애인 표준에 따른 새로운 생산 기술이 등장하였으며, 병원 기반 의료의 성장과 대규모 시설도 동시에 창조되었다. 시설은 장애인을 공동체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물리적 수단이었다. 이때부터 장애인은 자신을 스스로를 돌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바라보는 특징적 태도가 생겨났다. 1단계에서 “병신”으로 불린 사람들은 생존권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단계에서는 이들을 수동적이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 즉 장애인(disabled)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강화되었다. “병신(cripples)”이 무능력한 존재라는 의미의 “장애인(disabled people)”으로 전화된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은 바로 이 시기에 창조된 집단인 것이다.

  3단계는 아직 완전하게 도래하지 않았는데, 이 시기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활용을 통해 장애인도 노동과 사회에 참여함으로써 억압에서 최종적으로 해방되는 시기이다. 이 단계에서는 도움을 주는 자(helpers)와 도움을 받는 자(the helped) 사이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다시 말해, 신체 손상자들이 1단계에서는 “병신”으로 억압받았고 2단계에서는 “병신”이 사라지고 “장애인”이 창조되었지만, 다른 한편 보조공학 등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장애인의 사회 재통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런 발전 덕분에 3단계는 장애 제거(즉, 장애 해방)의 시기가 된다.

  핀켈스타인의 주장에 따르면, 장애인은 자본주의 사회가 그 생산방식에 적응할 수 없는 특별한 집단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창조’된 집단인 것이다.

  하지만 핀켈스타인의 창조론은 역사를 너무 단순하고 낙관적으로 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의 분석은 생산양식과 장애 인식ㆍ경험 사이의 관계만을 가정한다는 점에서 너무 단순하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장애인의 재통합시킬 것으로 가정한다는 점에서는 너무 낙관적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장애인을 위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전문가의 기득권을 강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성론

  오늘날 장애의 원인을 사회에서 찾는 이론들 가운데 창조론은 제한적으로 주장되는 반면, 구성론은 다양한 학자들이 다양한 이론틀에 기초하여 주장하고 있다. 구성론은 장애인이 창조된 구체적 실체를 가진 집단이라기보다 그 사회의 문화, 역사, 관습, 태도 따위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의 장애학자들이 이 같은 주장들을 주도하고 있다.

  가령, 미국의 여성 인류학자인 그로스(N. Groce)는 문화 상대주의 입장에서 농인의 차별을 연구하였다. 그녀는 미국 뉴잉글랜드 인근 마서즈비니어드섬을 연구하였는데, 이 섬에는 근친혼과 우성 농유전자 때문에 집집마다 농인이 있었다. 그래서 섬 주민들 대부분은 수화를 사용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농인들은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았고 자신들만의 분리된 문화를 만들지도 않았다. 따라서 농인에 대한 사회적 제약은 거의 없었고, 농인은 지역사회 생활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마서스비니어드섬 사람들은 모두 수화로 말한다, 2003, 박승희 역>

  인류학자 파브(P. Parb)도 아마존 부족 농인들을 연구하였는데, 이 곳에서도 모든 부족민이 수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농인들이 완전하게 사회에 통합될 수 있었다.

  이들의 연구는 모두 비장애인이 농인의 언어인 수화를 익히면 농인들과 충분하게 그 사회에 통합되고, 따라서 농인의 장애가 제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듣지 못한다는 것이 농인의 장애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문화적 방식과 태도가 농인의 장애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장애학 이론가들도 장애의 사회적 구성론을 제기한다. 이들은 젠더(gender), 소수 인종 이슈, 손상 경험, 비장애인의 태도 등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장애의 사회적 구성론을 제기한다. 이들은 의료 사회학자나 장애인 당사자 학자들이 생산한 연구 성과에 대해 비판적이며, 그 대신 장애인들의 다양한 경험을 포함하는 수정된 ‘사회모형’을 주장한다.

  이를 테면, 셰익스피어(T. Shakespeare)는 손상을 가진 사람들이 차별과 편견 탓에 장애를 경험하는데, 이런 편견은 단지 개인 상호간이 아니라 이 사회의 문화적 표현, 언어, 사회적 상징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 장애인이자 장애학자인 모리스(J. Morris) 역시 편견을 문제 삼는데, 그녀는 장애인을 타자 혹은 몸의 한계에 대한 가시적 증거로 대상화시킨 것이 편견이라고 설명한다. 가령, 궁중 어릿광대(court jester), 프릭쇼(freak show), 수용시설, 그리고 나찌 수용소 같은 이미지들이 장애인을 편견의 대상으로 삼은 역사적 사례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장애는 이 사회 구성원들의 편견이나 태도 때문에 발생한다. 즉, 사회적 편견이 장애를 사회적으로 ‘구성’한다는 말이다.

  사회적 구성론을 종합해 보면, 장애란 결국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구성되는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 사회는 비장애인은 정의하지 않으면서 장애인을 정의하고, 이들에게 특별한 사회적 역할을 강제하기 때문에 장애인은 억압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손상을 장애로 구성하는 사회적 고리를 차단해야 장애인이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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