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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호의 장애학 이야기
 미국 실용주의, 사회학, 그리고 장애학의 발전 (上) :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모니터링 센터 윤삼호 소장

미국 실용주의, 사회학,
그리고 장애학의 발전 (上)
개리 알브레트 씀 / 윤삼호 옮김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모니터링센터 소장)



  * 이 글은 에 실린 개리 알브레트(Gary Albrecht)의 논문을 요약하여 번역한 것이다. 두 차례 나누어 싣게 될 알브레트의 글을 통해 미국 장애학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 일면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장애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나이를 먹고, 또 아픔·질병·손상 관련 국제 뉴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장애를 보편적 경험으로 인식하게 된다. 손상의 가시성·개인적 장애 경험, 환경오염ㆍ담배ㆍHIV/AIDSㆍ사고ㆍ지뢰ㆍ내전의 영향, 먹이사슬의 취약으로 인한 장애 유발, 신생아 집중 치료, 노인 보건 개입 증가 등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장애를 인식하도록 만든다. 이 같은 이슈들이 제기되면서 장애는 한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 부, 지위에 관한 사례 연구의 대상이 된다. 또한 장애학은 문제의 보편성, 사회적 장애의 속성과 의미에 대한 학문적 관심, 그리고 권한강화·통합·정상성·차이의 정치에 관한 활동가적 표현에 응답하는 한 분야로 발전했다. 그리고 정책 입안자와 정치인은 점점 더 늘어가는 장애인과 노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 지원에 관한 대중 토론을 함으로써 장애학 성장에 일조했다. 따라서 장애학은 학계·개인의 경험·정치운동·공공 정책을 아우르는 신흥 학문 분야이다.

  장애학 분야에는 다음과 같은 6가지 쟁점이 있다. 1) 장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 담론이 있는가? 2) 장애학 지도자와 대표자들이 모든 장애인을 대변하는가? 3) 장애인 당사자만이 장애를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혹은 이들만이 장애학에 기여할 수 있는가? 4) 장애학은 확립된 학문 분야인가? 5) 장애학에는 공통된 역사와 지적 전통이 있는가? 6) 장애학 관련자들은 장애인 보건ㆍ복지정책과 “합리적 편의”, “권한강화”, 그리고 “삶의 질”을 구성하는 것에 일반적으로 동의하는가?

  특정 학문 분야는 역사적 맥락, 경험, 지적 전통, 문화, 정치ㆍ경제체제에 따라 그 성숙 정도가 다르다. 따라서 장애학의 발전은 맥락 안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나는 실용주의와 미국 사회학이 미국 장애학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위의 6가지 쟁점을 어떻게 제기하는지 논의하면서 다음 주제를 다룰 것이다. 첫째, 실용주의가 어떻게 미국인의 사고ㆍ사회정책ㆍ세계관을 형성하였는지 검토할 것이다. 둘째, 실용주의가 어떻게 초기 미국 사회학 발전과 결합되었는지 보여줄 것이다. 여기에는 장애 이슈 제기에 필요한 틀과 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조사 연구와 시카고학파의 사회학 및 상호작용론이 포함된다. 셋째, 장애 운동이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어떻게 미국적 맥락에서 정치적 영향을 행사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장애학을 하나의 학문 분야로 만들었는지 분석할 것이다. 넷째, 강고한 미국적 개인주의ㆍ자본주의ㆍ민주주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미국에서 장애학이 어떻게 정치경제의 영향을 받았는지 검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미국 장애학의 전망을 살펴 볼 것이다.


  미국 실용주의

  실용주의는 미국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장애학에 두루 영향을 미친 철학 사조이다. 실용주의는 피어스와 제임스가 창시한 철학 유파이다. 그 뒤, 이 유파는 20세기 초 듀이, 쉴러, 미드의 연구에 그리고 최근에는 셀라스, 콰인, 퍼트넘, 로티, 핵, 웨스트의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이 많은 과학철학 및 사회정책 질문을 제기한 이래, 실용주의는 미국 사회과학과 문화 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실용주의는 그 형태가 다양하고〔기존의 것을〕재창조한 것이어서, 모든 실용주의자들이 하나의 개념 우산 아래에서 연구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초기 실용주의자들은 산업혁명과 물리과학의 맥락에서 연구하였다. 그들은 정확성 개념과 응용과학 법칙의 정식화에 매료되었다. 이를테면, 피어스는 “경험이 믿음에 어긋나는 순간” 연구자는 기꺼이 “자신의 신조 덩어리 전체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형이상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한 연역법을 반박했다. 과학적 조사자는 자신의 신조와 증거를 평가할 때 “회개하는 오류가능론자”여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사심 없이 진리를 향한 욕망을 추구하도록 하고 엄격한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이론과 연구 체계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이론은 “가능한 한 가장 엄격한 시험”을 받아야 한다는 포퍼의 반증 원리와 궤를 같이 하는 주장이다. 과학적 방법은 객관적 지식, 리얼리즘, 보편성을 강조한다는 점이 매력이다. 즉, 진리는 시험받은 이론 안에 있고, “사실(facts)” 안에 있는 것이다.

  제임스의 실용주의와 피어스의 실용주의는 그 강조점이 다소 다르다. 제임스는 특정 개념 혹은 사회정책을 신뢰한 실천적 결과, 즉 실행(praxis)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길, 형이상학적이고 도덕적인 질문의 복잡성을 논의할 때, “실용적 방법은 각각의 실천적 결과를 추적함으로써 각 개념을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모든 논쟁을 해결하는 과학적 증거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정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증명되거나 반증될 수 없는 “종교적 신조”가 의사 결정에 사용될 때가 더러 있는데, 이는 그런 신조가 믿는 자의 삶에 잘 어울리고 실천적 결과를 갖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진리가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종교적 신조”와 진리의 사회적 구성 둘 다 지식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측면을 인정하는 것이다. 제임스식 실용주의는 그 뒤 경험의 주관적 의미에 관한 탐구로 이어진다.

  듀이와 쉴러는 실용주의를 더 행동주의적인 방향으로 옮겨 놓았다. 듀이는 피어스가 주목한 “정확성 추구”에 빠져들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앎은 실천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인정했다. 좋은 이론은 실천에 기초하며 하나의 프로그램을 가진 경험이 특정한 관념의 성패를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수정된다는 주장했다는 점에서, 듀이는 개혁주의자였다. 쉴러는 듀이보다 더 혁명적이다. 진리는 상대적이며 “우리가 가치가 부여한 것”이 곧 진리라고 주장함으로써, 쉴러는 현실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명제가 “우리의 목표를 진척시킬” 경우에만 그것이 진리가 된다고 했다.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쉴러는 가치와 주관적 경험이 우리가 진리인 것 혹은 옳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윤색하는지를 지적했다.

  (한편〕로티, 콰인, 퍼트넘, 핵을 비롯한 신실용주의 그룹은 초기 실용주의자들이 지지한 “객관적 확실성”이 과학이나 인식론에서는 불가능함을 인정한다. 이런 연구는 오늘날 문화학에서 논쟁이 된 많은 이슈에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가령, 무엇이 증거를 구성하는가? 텍스트는 어떻게 읽혀야 하는가? 누가 다른 사람의 경험에 관해 말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가? 인권이란 무엇인가? 주어진 특정 상황에서 무엇이 정당한 것인가?


  실용주의, 미국 사회학, 그리고 장애학의 합류점

  실용주의는 사회학 발전에 영향을 줌으로써 미국 장애학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실용주의가 사회과학자 들에게 개념 틀을 제공할 뿐더러 논거 구성에 필요한 데이터와 분석의 형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자들은 믿을만하고 유용한 사회적 행동을 설명하는 이론, 방법, 지식 체계를 발전시키는데 관심을 가졌다. 세월이 지나면서, 실용주의는 사회학 원리에 이 같은 목록을 적용시켰는데, 여기에는 대체로 3가지 방식이 있었다.

  첫째, 초기 실용주의는 사회학이 과학이 되려면 인식론적 반증 원리를 채택함으로써 자연과학의 “과학적 방법”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퍼가 다듬고 기초를 닦은 반증 원리는 이렇다. 과학자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한 이론을 제시한 다음, 그 이론이 시험을 잘 통과하는지 여부를 관찰함으로써 그 이론의 예측 능력을 시험한다. 엄밀한 시험을 통해 가설이 부정적인 것으로 판명될 경우, 연구자는 이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이론을 수립해야 한다. 반대로, 시험과 데이터가 그 이론을 뒷받침할 경우, 과학자들은 그 이론의 완벽한 가설에 기초하여 더 많은 시험을 하고 이론을 확장시키기 위해 그 이론을 계속 사용할 것이다. 피어스에 따르면, 이렇게 접근법이 확장되면, “법칙”이 발전하고 진실의 실체에 접근한다. 따라서 실용주의는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고, 이론 발전에 기여하고, 하나의 주장을 시험하는 증거로서 기능하는 관찰ㆍ표본조사ㆍ인구조사를 통해 “객관적” 데이터를 수집하도록 초기 사회학자들에게 끊임없이 주입시켰다.

  둘째, 실용주의자들, 특히 제임스는 실천적 현실과 사회정책에서 분석의 고정점(anchoring of analysis)을 강조하였다. 그의 주장을 들어 보면, 실용주의자는 “추상과 불충분함을, 말로 하는 해법을, 잘못된 선험적 판단을, 고정된 원리를, 닫힌 시스템을, 그리고 가정된 완전무결함과 기원을 멀리 한다. 실용주의자는 구체성을, 정확성을, 사실을, 행동을, 그리고 파워를 추구한다.” 이 같은 주장을 통해, 제임스는 튼튼한 이론, 사회 문제 연구, “현실” 세계에서 행동 관찰과 자료 수집, 사회정책 형성과 그 정책이 행위에 얼마나 효과를 미치는지에 대한 시험, 그리고 사회적 파워의 배분과 행사에 관한 조사를 위한 기초를 세웠다. 제임스에게 실용주의란, 이론과 정책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셋째, 실용주의적 사고가 진화하면서 피어스류의 엄격한 “객관주의”와 과학적 방법의 적용에서 벗어나 주관적 경험, 상대적이면서도 문화적으로 다른 행위 개념, 정보 수집과 해석에서 패러다임의 이동, 그리고 경쟁하는 담론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같은 입장을 가진 대표적인 학자가 로티이다. 그는 객관성을 주장하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우리의 증거 기준과 우리의 과학적ㆍ사회적 정책 실천은 문화적 관습이라고 주장했다. 로티는 이슈 논의에 참여하는 것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주관적 차이와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개방적 담론에서 텍스트를 분석하였기 때문에 장애학을 비롯하여 문화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관점은 상황과 텍스트 읽기, 그리고 관찰자/독자와 관찰되어지는 것/텍스트로 존재하는 것 모두 분석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로티식 실용주의는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중요시한다.

  이 같은 이해 방식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말하고 해석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담론 공동체 혹은 학자 공동체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그런 공동체에 가입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그 진실함과 유용함을 납득시킬 수 있는 주장이 어떻게 구성되고 그 증거는 어떻게 제출되는가? 문화적 맥락과 역사는 상황 정의에 어떤 영향을 주며, “사실”은 어떻게 해석되는가? 증거, 이론, 그리고 주장이 어떻게 파워, 변화, 타인의 행위를 동반한 사회정책으로 전환되고 지위 위계(status hierarchy)와 제도의 구조를 재배치시키는가?

  이상의 입장들은 실용주의 형식과 단순히 다른 게 아니라 그것과 급진적으로 대립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 입장들은 지식을 어떻게 얻고 활용할지에 대해서는〔기존이 실용주의와〕동일한 질문을 많이 제기할 뿐만 아니라, 지식은 그것이 실천적인 문제에 적용되었을 때 나타나는 유용성과 결과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기존 실용주의와〕공유한다.

  이와 같은 실용주의의 3가지 주제는 사회학 발전에, 나중에는 미국 장애학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주제들은 방법론적이고 구체적이고 이론적인 사회학 연구 접근법들 - 양적 접근법, 질적 접근법, 역사적/맥락적 접근법, 사회 행동/사회 정책 접근법, 통합연구 접근법 - 과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사회학 연구의 방법론적 접근법들은 상당 부분 겹쳐있지만, 각각은 특정한 과학철학, 지적 맥락, 그리고 결과의 독창적 활용으로 무장한 독자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사회과학에서 양적 연구는 과학자의 지위를 얻으려는 사회학자들의 욕망에서 비롯되었으며, 과학자들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초기 실용주의자들의 언명과 자연과학자들의 방법론에 따르면, 연구 대상인 현상들은 정확하게 측정되어야 하고, 사건과 단위는 계산되어야 하고, 가설은 연역적 방식으로 시험되어야 한다. 1790년부터 시작된 미국 인구통계는 이 같은 양적 데이터의 초기 자원들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지난 100년 동안 미국 공중위생국과 의료과학자들은 인구의 특성을 확인하고, 보건 문제를 정의하고 적절하게 개입하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같은 개입의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전염병학적 데이터를 발전시키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30년대 시카고대학 사회학과의 사회생태학 관점의 영향을 크게 받은 양적ㆍ사회적 전염병학은, 사회적 조건과 정신적 혼란으로서의 사회 문제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길을 개척하였다.

  이처럼 “과학적 방법”에 따른 양적 연구를 강조하는 것이 지금도 미국 사회학에 남아있다. 와 같은 잡지들은 양적 방법을 사용하여 빈곤, 인종, 젠더, 교육, 스트레스, 차별ㆍ소득 불균형 같은 결과 변수에 따른 자원 접근성 및 노동 접근성, 기회 접근성, 건강, 웰빙이 모든 시민의 동등한 정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연구한 논문들로 넘쳐 난다. 세이지(Sage Inc) 같은 사회과학 출판사는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더 잘 측정ㆍ분석하고, 가설을 더 잘 시험하고, 그리고 더 정교한 개인ㆍ집단ㆍ조직의 행위 모형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법론 입문서 시리즈들을 출판해 왔다. 이 방대한 문헌들은 피어스가 제기하고 자연과학의 연구가 정당화한 “과학적 방법”의 정신을 따른다.

  장애 분야에서는 이 같은 주제들이 재활 연구와 장애 연구에 적용되었다. 미국의 경우, 재활 연구는 본래 외상이나 손상 진단 이후 개인의 의료 재활, 혹은 개인이 직장을 새로 얻거나 기존 직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물리치료, 직업치료, 교육을 통한 사회 재활을 의미했다. 의료 재활 연구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시작되었는데, 특히 1960년부터 현재까지 급성장하고 있다. 의사들에 의해 거의 대부분 주도되고 있는 이 연구는, 개인의 기능적 상태를 개선하고 개인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지식 획득을 목표로 한다. 사회 재활 연구는 경제학자와 직업재활 및 특수교육 연구자들이 주로 수행한다. 이들은 손상이나 장애를 입은 사람의 직장 복귀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때론 의사들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기도 한다. 미국 보훈청과 사회보장청의 장애 관련 부서가 이런 연구를 주로 수행해 왔다. 의료 연구자들은 장애인을 기능적으로 더 독립적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 시행에 도움이 되는 양식과 결과를 증명하기 위해 표본조사, 표적 샘플링, 이중쟁점 실험, 그리고 평가 연구 같은 양적 방법을 채택했다. 사회학자와 경제학자를 비롯하여 사회 재활 연구자들도 직장 복귀를 예측하는 변수와 개입이 어떤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양적 방법과 통계 모형을 사용할 때도 있었다.

  사회학자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미국 장애학자들은 사회적 관심사와 연구 패러다임을 사회학에서 장애학으로 옮겼다. 장애학의 양적 연구가 이 같은 영향의 한 단면이다. 이를테면, 후지우라와 루트코우스키-크미타는 이렇게 주장한다. 장애 집계(counting disability)가 장애인, 정부, 정책 입안자, 사회과학자들을 위한 중요한 사업이다. 장애 정의에 관한, 그리고 누가 무엇을 축정하여야 하는지에 관한 열띤 논쟁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의료 및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안락한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 정부가 장애를 정의하고 집계할 수 있어야 한다. 꼬리표 붙이기, 장애인 경험의 무시, 그리고 환경 접근성에 대한 관심 부족은 크게 우려할 만하지만, 정부가 장애인과 이들의 욕구를 정의할 수 없다면 정부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뿐더러 환경 변화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예외들이 있긴 하지만, 조직된 정치 국가는 자국민의 안녕을 증진하기 위해 존재한다. 데이터는 그 과정을 알려줄 뿐더러 국가 정책의 계획과 조직을 알려주는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건강 상태 조사는 고대적 실천이자 민족 국가 사이에 거의 보편적인 것이다.”

  게다가, 이 둘은 “‘사회 개혁가, 시민단체, 박애주의자들’의 폭넓은 정보 요구가 19세기 통계 사업의 토대였다”는 오버쉘의 주장에 동의한다. 이 같은 장애 통계의 취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의 방법론적ㆍ통계적 기술 덕분에 연구자들은 사회적ㆍ문화적ㆍ환경적 효과를 좀 더 세밀하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다. 지금의 사회과학자와 장애학자들은 이와 같은 통계를 활용함으로써 장애와 장애 효과, 보건과 사회적 개입, 물리적ㆍ사회적 환경, 그리고 다른 사회 정책의 결과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과 모형을 더 잘 다듬을 수 있다.

  장애 측정과 장애인 집계의 목적이 꽤나 분명하지만, 이 활동은 많은 어려움과 논란을 수반한다. 그 까닭은 장애가 “복잡하고 다차원적 개념”이기 때문이고, 장애 측정의 최종 목적이 복합적이기 때문이고, 그리고 동일화가 장애인들에게 꼬리표 붙이기와 차별 같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WHO가 만든 장애 분류표 ICIDH의 발전과 활용, 그리고 세계은행과 WHO가 공동 후원한 세계질병부담프로젝트와 관련된 지금의 논란을 통해 이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입장이나 특정한 과학적 방법에 대한 집착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양적 장애 연구는 사회학의 영향과 장애학과 관련된 실용주의의 일부 핵심 원리를 반영한다.

  또한, 사회 정책과 정치를 형성하는 연구에서 실용적 주제는 사회학과 장애학의 질적, 사회-역사적 접근법에도 반영되어 있다. 실용주의자들과 신실용주의자들 모두 오늘날 사회학과 장애학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오늘날 질적, 문화적 연구자들은 현실의 사회적 구성, 행위와 텍스트 해석에서 개인의 경험ㆍ문화ㆍ맥락의 중요성, 연구 대상자의 “목소리” 경청, 그리고 학자와 연구 대상자들 사이의 “대화”를 특히 강조한다. 실용주의와 질적ㆍ사회-역사적 연구를 통해 사회학과 장애학에 토대를 제공한 대학들 가운데 하버드대학과 시카고대학이 유명하다. 실용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사회학 “학파”가 오랫동안 이 두 대학에서 성행했다. 제임스는 20세기 초 하버드대학에 재직하면서, 보이즈를 비롯한 사회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제임스의 제자인 보이즈는 그를 “현실주의적 실용주의자”라고 불렀다. 웨스트와 퍼트넘은 하버드대학에 재직 중인 신실용주의자들로서, 최근 미국사회학회장을 역임한 윌슨과 스카치폴 등 오늘날 사회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가령, 저소득층 흑인 노동의 의미, 가난한 소수자를 위한 사회정책, 사회정의에 관한 윌슨의 연구는 이 같은 영향력을 반영한다. 하버드대학과 시카고대학 모두 질적 방법론과 양적 방법론 모두를 사용하여 사회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학의 전통이 강하다.

  저명한 초기 실용주의자인 듀이와 미드의 가장 중요한 연구들 가운데 일부는 시카고대학에서 수행되었다. 하지만 애벗의 지적처럼 사회생태학, 사회심리학, 인구통계학, 사회조직론과 관련된 사회학에 중요한 기여를 한 학자 집단은 비단 시카고대학 “학파”만이 아니다.

  베버와 지멜의 연구에서 비롯된 상호작용론은 사회 세계 안에서 행동하는 개인의 관점을 통해 사회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접근법은 듀이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서 시카고대학의 미드와 블루머가 이른바 상징적 상호작용론(symbolic interactionism)으로 발전시켰다. 나중에 블루머는 UC버클리 사회학과로 옮겨 많은 학생들에게 상징적 상호작용론을 가르쳤다. 미드와 블루머가 가르친 시카고대학 학생이었던 베커, 고프먼, 슈트라우스 등은 의료사회학과 질적 연구방법론을 다룬 초창기 책들을 생산하는 틀로서 상징적 상호작용론을 활용하였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기호, 제스처, 공유된 규칙, 문어와 구어 같은 상징을 통해 인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의 일종이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원래 개인과 집단에 관한 분석에 적용되었지만, 지금은 조직 나아가 사회구조를 분석하는데 적용된다. 이 관점의 핵심은 이렇다. 인간은 세계에 직접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 세계를 조직하고, 그 세계에 반응한다. 따라서 우리는 물리적 세계에서 살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지속적인 과정을 포함하는 상징적 세계에서도 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우리와 우리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 비슷한 기술을 사용한다. 상징적 상호작용은 주관적 경험과 사회적 현실의 해석을 강조하지만, 또한 개인은 다른 사람의 행위를 상징적으로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도록 한다.

  장애학자들은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관점을 사용하여 이런 질문을 던진다. 손상이 어떻게 장애가 되는가? 다른 손상을 가진, 그리고 다양한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장애는 무엇인가? 주관적 장애 경험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은 장애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정의하고, 반응하는가? 장애는 개인 안에 있는가, 환경 안에 있는가, 아니면 이 둘의 상호작용 안에 있는가? 의료 전문가와 서비스 제공자는 장애인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같은 질문을 통해 장애학자들은 장애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론적, 경험적 이해를 심화시켰다.

  사회적 상호작용론은 사회적 문제ㆍ행위ㆍ제도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를 분석하는데 아주 잘 어울린다. 로버트슨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을 지각하거나, 장소나 인과관계를 지각하거나, 사회를 지각하면서 태어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이 같은 것들을 배울 뿐이며, 우리가 배우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그 사회 속에 우리가 위치한 장소에 따라 다르다.” 버거와 루크만에 따르면, 현실은 외재화(externalization), 객관화(objectification), 내재화(internalization) 3단계를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외재화는 사람이 자신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적 산물을 생산할 때 나타난다. 장애 분야에서 외재화의 예로는 농인의 독순술(讀脣術)과 수화, 그리고 똑같이 휠체어를 탄 척수 손상자들의 집단 일체감 따위를 들 수 있다. 객관화는 이렇게 외재화된 산물이 그 자신의 의미를 가질 때 나타난다. 이를테면, 휠체어 심벌은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주차장과 화장실을 상징하는 것으로 전 세계에서 통용된다. 내재화는 사람들이 사회화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주장한 현실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배우고, 그 사실을 자기 자신의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의식의 일부로 만들 때 나타난다. 따라서 비슷한 문화 안에서 사회화된 개인은 이 같은 믿음이 어디에서 유래되었고 왜 그런지에 대한 질문을 거의하지 않더라도 똑같은 현실 인식을 공유한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화와 태도는 이 같은 내면화 과정의 한 사례이다.

  이런 지적 전통 안에서, 졸라는 의료사회학자로서,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의료사회학을 공부했지만, 그의 연구는 시카고대학 사회학자들의 사회적 상호작용론과 민족지학 연구의 향취가 강하다. 졸라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보스톤에 거주하는 세 문화 집단, 즉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유대계의 건강관리 조치를 위한 도움을 연구했는데, 집단에 따라 고통과 차이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미국사회학회 의료사회학 분과 회장이자, 설립자이자, 미국 장애학협회 설립을 주도한 사람이자, 1990년 미국장애인법(ADA) 제정에 중책을 맡은 장애운동의 핵심 인사였다. 그는 상징적 상호작용론 틀 안에 있는 학자였으며, 학문과 운동을 결합시킴으로써 실용주의 구성요소를 자신의 연구에 비판적으로 접목시켰다. 졸라는 한편에서는 비판적 연구 주제들을 선정하여 재원을 지원하는 국립과학아카데미위원회 위원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법원의 계단 문제로 시위하는 곳에서 볼 수 있는 활동가이기도 했다.

  < 下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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