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단 메뉴 바로가기
  2. 본문 바로가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야기 프리즘
HOME > Webzine 프리즘 > Webzine 프리즘
본문 시작

webzine 프리즘

프리즘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분기마다 발간하는 웹진입니다

지난호바로가기 이동
시선과소통

하성준의 유학일기


하성준의 유학일기하성준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재활상담 석사과정)


 요즘 장애인계 소식들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장애등급재심사”관련 소식들이다. 사실 장애연금이 올 7월부터 지급되고 활동보조인지원사업이 난항 끝에 4년이라는 시간동안 공식적으로 실시되면서 장애등급의 실질성 논란이 다시 붉어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장애등급의 재심사에는 부정수급을 막고 진정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라고 생각해야 겠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장애인당사자들은 소수의 부정수급자들 때문에 다수의 장애인들이 등급재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불편아닌 불편을 겪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더구나 재심사에 필요한 비용을 장애인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니 장애진단의 경우 진단비용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도 형편이 곤란한 장애인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재심사를 두고 여러 곳에서 나름의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데 현재 장애등급이 장애인들의 장애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전재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의학적 판정기준에 의해 정의되는 현재의 장애등급이 장애의 사회적, 직업적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이미 2003년에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장애의 직업적 판정기준마련”에 관해 두 차례나 연구용역이 이루어졌고 꾸준히 장애인계에서도 장애판정의 문제를 지적해 왔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Never ending story로 진행되어 온 것이 사실이었다. 이 자리에서 장애인고용공단의 연구성과를 비판하거나 지금까지 장애인계의 여러 가지 의견들 중의 하나를 지지하러는 것이 아니라 냉정한 태도로 장애판정과 장애의 등급재를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연구결과와 장애인계의 의견을 언급해 본다.

 우선 장애인고용공단에서 나온 연구결과는 장애인계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장애인계에서는 직업적 장애판정기준마련을 위한 연구였던 만큼 직업적 장애판정기준이라는 것에 대해 새로운 판정기준의 마련이라는 초점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장애인복지법 상의 몇 급까지를 중증장애인으로, 나머지는 경증장애인으로 규정하는 종전의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에서 장애등급을 별도로 규정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1차 연구의 결과는 1981년 이후 변모한 장애의 개념을 설명하고 호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장애판정기준을 소개했다. 사실 이 연구에서 소개된 장애판정기준이라는 것이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판정기준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라 필자를 비롯한 연구결과를 본 장애인계 사람들은 선듯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장애인고용공단의 2차 연구 역시 직업능력평가체계를 장애판정기준마련의 도구로 삼자는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직업적 장애판정기준이라는 사안에 대한 장애인계와의 의견차이만을 드러내고 말았다.

 장애인계에서도 그 동안 꾸준히 장애판정과 관련해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실제로 어떤 상태를 1급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의견보다는 장애판정에 사회적, 직업적 요소를 반영해야 한다는 식의 원칙적인 의견만을 제시해 왔기 때문에 장애판정기준이나 장애등급에 대한 논란이 잊어버릴만 하면 한번씩 공론화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실제로 장애인계에서 일했던 나 역시 앞서 언급한 장애인계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의견까지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또 장애유형과 장애등급을 기준으로 각종 감면혜택이나 수당 및 연금의 지급이 계속되고 있는한 이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장왕하게 필자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등급재심사나 장애판정기준에 대해 지난일까지 들춰가며 서두를 꺼낸데는 최근 자립생활센터에서 실습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통해서 6가지로 나누어진 장애등급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장애등급 몇 급 하는 경우보다는 중증장애인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장애관련 서비스에서도 중증과 경증으로 장애정도를 구분해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법률에서는 장애 자체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고 장애의 정도를 중증 (Severe)이나 경증(Mild)로 구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의 경우 여러 법률들이 비슷한 정의를 가지고 있는데 대체로 “좋은 눈의 ”교정시력이 200분의 20 (대략 0.1) 이하이거나 시야가 20도 이하“인 경우를 시각장애로 규정할 뿐 이 보다 더 세분화해서 시각장애 자체를 장애정도에 따라 분류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개념을 흔히 미국에서는 ”법적 실명(Legal Blindness)"이라고 하는데 이 기준에 해당하는 시각장애인은 연방 및 주정부가 제공하는 여러 가지 시각장애인복지프로그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장애연금과 유사한 SSDI나 산업재해보상연금과 같이 장애를 이유로 지급되는 연금제도의 경우에도 노동력의 상실 정도를 연금지급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등급과는 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보상보험에는 장애를 종류와는 관계없이 14가지 등급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기준을 살펴 보면 장애의 종류를 불문하고 14가지로 장애를 구분해서 연금지급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결국 미국의 산업재해보상연금은 개인의 노동력상실을 의학적 근거로 산정하여 연금지급의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지류마티스로 장애를 가진 사람의 노동력은 그 사람이 얼마만큼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얼마만큼 오랜 시간동안 수행할 수 있는지를 산정하여 몇 퍼센트의 노동력이 상실되었다고 인정하고 상실된 노동력 만큼 연금을 지급한다.

 여기서 나는 중대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미국도 의학적인 판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학적인 기준만을 사용하는 것이고 미국은 의학적 기준과 함께 다른 요소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의학적 기준을 바탕에 두고 있다. 장애가 인간에게 나타나는 의학적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고 이러한 차원에서 의학적 장애판정은 결코 간과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장애가 개인의 의료적 문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회적 측면에서 해석되어져야 한다는 견해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오늘날의 사조를 생각해 볼 때, 장애판정 역시 사회적 요소를 포함시켜야 한다. 그럼, 어떻게 사회적 요소를 장애판정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장애판정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필자가 실습하고 있는 자립생활센터에서는 주로 장애노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혹,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말해 두지만 미국의 자립생활센터가 주로 장애노인들에게만 서비스하는 곳은 아니다. 다만 장애노인의 사례가 다른기관들로부터 많이 의뢰되어지고 있으며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모든 장애인에게 자립생활센터는 개방되어 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고 의뢰된 대상자에 대해서는 먼저 초기면접을 통해 의뢰된 대상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법적으로 확인되었을 뿐, 여타의 내용은 사실 대상자를 의뢰한 기관에서 작성한 서비스제공기록에 의존하지 않고는 장애정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마을에서 좀 동떨어진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70세 시각장애노인이 의뢰된 경우 먼저 직원이 대상자의 가정을 방문하고 인터뷰를 하게 된다. 이때, 시각장애노인의 가정을 방문하는 자립생활센터의 직원은 만날 사람에 대한 대략적인 상황만 파악하고 있을 뿐, 다른 구체적인 사항은 직접 만나서 파악한다. 즉, 시각장애 외에 다른 불편한 곳은 없는지, 다른 가족은 근처에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시계보기 냉난방기의 조절 등 집안에 있는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지,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등 개인적인 생활부분을 먼저 알아 본다. 그 후에 어떤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참여하는지, 어떤 취미생활을 이전에 가지고 있었으며 현재는 그 활동을 할 수 있는지, 동료상담모임이나 자립생활센터의 여러 가지 집단활동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등 기존의 사회적 활동과 향후 자립생활센터에서 주최하는 모임에 참가할 의사 등을 알아 보게 된다. 물론 이 인터뷰에서 여러 가지 생활편의용구도 소개하고 당장 필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전달하거나 사용법을 간당하게 알려 준다.

 결국 미국에서는 의사에 의해 한 개인의 장애유무가 법적으로 결정되지만 장애가 있는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는 장애의 정도를 우리나라처럼 법적, 행정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장에서 장애인의 장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교육적, 직업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판단에 근거하여 필요한 보장구, 서비스의 양 그리고 기간 등이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자. 장애인복지관의 서비스들은 장애인 또는 그 가족의 직접적인 신청에 의해 이용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장애인 본인도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인지를 생각하기 전에 준다고 하면 무작정 받아 두고 본다. 흰지팡이가 좋은 예인데 사실 잔존시력이 어느 정도 있는 2급 정도의 시각장애인들이나 일부 1급 시각장애인들은 실제로 흰지팡이를 보행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잔존시력이 없는 일부 1급 시각장애인의 경우 흰지팡이는 외출할 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물건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흰지팡이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전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눠주는 쪽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받는 쪽의 문제가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다. 규정상으로는 1급 혹은 2급 시각장애인들은 잔존시력의 유무에 상관없이 흰지팡이를 신청할 자격이 있고 그들의 신청을 받은 기관들 역시 규정에 의해 지급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현재 장애등급제도가 가진 맹점을 알 수 있다. 우선 6등급으로 세분화하여 뭔가 달라 보이는듯 하지만 알고 보면 등급별 격차가 거의 없다. 장애등급 1급과 2급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거의 차이가 없다. 통상적으로 시각장애의 경우 3급까지를 중증으로 간주하고 있어 실제로는 1, 2, 3급이 중증으로 4, 5, 6급이 경증으로 분류되어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결국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일선현장에서는 구체적인 서비스제공에 대한 결정권한이 없거나 미약하다. 또 장애연금실시를 앞두고 나온 장애등급재판정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연금액수도 좀 올려 잡고 단순히 중증과 경증으로만 구분할 것이 아니라 장애종류별, 장애등급별로 수령액을 차등화했다면 기존의 장애등급제가 나름 의미있는 것이 되었을런지도 모른다. 재판정에 따른 비용 역시 문제가 된다. 판정을 애초에 잘못한 쪽은 장애인이 아니다. 장애인이 자신의 등급을 높이기 위해 어떤 트릭을 사용했다면 그 사람의 장애를 판정해준 의사가 그 트릭에 속은 것이다. 이런 비윤리적인 장애인과 무능한 의사가 만들어낸 가짜 장애인 혹은 중증장애로 등록된 경증장애인의 문제를 모든 장애인의 문제로만 여긴다는 것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또 구체적으로 장애판정을 재심사하는데 드는 비용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장애연금 몇 만원 때문에 장애판정비용 몇 만원을 장애인 본인들이 부담하게 한다는 것이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비용만을 증가시키는 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장애판정을 받기 위해 안과의사를 찾은 적이 있다. 대체로 의사를 통해 받는 장애판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장애인의 현재 상태를 의학적 검사과정을 거쳐 기술하는 장애진단이다. 둘째가 장애판정을 요구하는 기관에서 필요한 내용을 서식으로 만들어 그 작성을 전문의가 하도록 하는 의견서형태의 장애판정이다. 또 판정비용은 본인이 부담하는데 장애의 종류나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첫 번째 경우는 의사를 만나서 기본적으로 진단받는 정도의 비용이면 가능하다. 두 번째의 경우를 리포팅한다고 해서 첫 번째 경우에 소용되는 비용의 20% 정도가 소요된다. 구체적으로 액수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미국이 지역별로 물가가 상이하여 딱 얼마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물가가 비교적 저렴한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첫 번째 경우에 약 7만원이 들고 두 번째 경우에는 약 2만원 정도가 든다. 정리하면, 의사로부터 받는 장애판정은 결국 장애인이 현재 의학적으로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를 기술한다. 시력이 어느 정도이고 현재 눈이 어떤 상태이며 그 원인은 이러하다고 기술한 다음, “이 상태로는 인쇄문자를 인식할 수 없다.” 혹은 “운전이 전혀 불가능하다.” 등의 의견이 상황에 따라 의사 본인의 면허번호, 서명과 함께 기록된다.

 오늘날 우리나라 장애인등록제도나 등급판정기준이 애초에 일본의 제도를 모방하여 출발하기는 했지만 제도의 실시가 거듭되면서 변모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제 좀더 큰 틀에서 생각해 볼 때, 현실적인 수준 그러니까 여섯 가지로 분류할 것이 아니라 중증과 경증 딱 두가지로만 분류하고 자립생활센터나 장애인복지관 등 서비스 실천현장에서 개인의 직업적, 교육적, 사회적인 부분의 장애를 반영한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장애는 더 이상 개인의 의료적 문제는 아닐지 모르지만 장애가 가지고 있는 다른 요소들 예컨대 직업적, 교육적, 사회적 요소를 반영하여 판정의 기준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나 일본과 같이 판정제도 속에서 장애정도를 등급으로 분류하는 경우 이러한 추가적 요소들을 반영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이제 장애인계에서도 장애판정기준이라는 끝도없는 이야기 속에서 결론도 없는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역시 너는 짖어라 나는 모르겠다는 식의 태도만 보일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등급제를 포기하던가 등급제를 지속할 것이라면 보다 구체적인 차별화된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등급만 여섯 가지로 나누고 제도는 중증과 경증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운영할 것이 아니라 1급과 2급이 명백하게 구별되는 제도, 허위로 장애등급을 판정받는 가짜 장애인의 양산을 막는 실질적인 대안,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들이 그러한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의 보장 등 보다 구체적이고 의미있는 변화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프린트하기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