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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라리아를 찾아서


미국 자립생활운동에 대한 곁눈질이범재 ([사]한국장애인인권포럼 대표)


비도시지역자립생활을 위한 공동계획 총회에 다녀와서

 1. 미국의 자립생활센터들의 연합체는 크게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전국자립생활연합회(NCIL)이고 다른 하나는 '비도시지역 자립생활을 위한 공동 계획'(Association of programs for rural independent Living-이하 April)이다. April은 전국적으로 대략 200여개의 자립생활센터들을 포함하고 있다는데 매년 한번씩 총회를 개최하여 회원들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공동의 아젠다를 발굴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의 휴양도시 바하르드에서 열린 April의 총회 사진

 April의 총회는 작년에는 뉴올리언즈에서 열렸고 내년에는 캔사스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는데 올해는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의 휴양도시 바하르드에서 열렸다. 매년 200여명이 넘는 활동가들과 센터의 책임자들이 모인다고 하는데 올해는 푸에르토리코가 멀기도 하겠거니와 특히 미국을 덮친 금융위기의 여파로 참가자가 조금 줄었다고 한다.

 April의 총회는 어떤 면에서는 조금 형식적인 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미국의 자립생활운동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개회전 행사를 포함하여 5일간의 총회를 통해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겠으나 전체적으로 미국, 특히 그 가운데서도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의 자립생활운동을 개관하는 데는 매우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개회전 행사와 공식 행사들, 그리고 참가자들 가운데 April의 주요 지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미국의 자립생활에 대해서 조금의 이해를 넓힐 수 있었고 우리의 자립생활운동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여기서 적은 내용은 학문적으로나 기록적으로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짧은 시간과 제한된 인터뷰, 그리고 언어의 제약이 많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큰 틀에서는 우리의 운동을 되돌아 보고 미래를 논의하는데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간단한 감상기를 적어 본다.

 2. 먼저 기대와는 다르게 미국의 자립생활운동들도 대부분 활동보조서비스를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하고 있었고 이로부터 얻어지는 재정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거칠게 볼 때 미국에서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중계하는 기관이 자립생활센터, 영리 기업으로 이분화 되어 있었으며 활동가들은 대략 50%정도를 자립생활센터들이 담당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이는 우리와 한편으로는 비슷하고 한편으로는 다른 점이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아직 완전한 영리 기업이 중계서비스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부의 노인요양서비스 중계시스템을 보면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도 곧 영리기업에 완전히 개방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도 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경우 자립생활 센터들이 전체 중계서비스에서 차지하는 몫이 대략 20% 내외인데 반해 미국의 경우 자립생활센터들의 몫이 우리보다는 훨씬 높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활동보조서비스의 역사가 오래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립생활센터들의 서비스 제공상의 강점들이 작동한 결과로도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적절하게 통제해 온 정부와 자립생활 운동진영의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자립생활운동진영도 활동보조서비스의 공급체계나 시장 및 영리중계기관으로의 중계기관 확대 허용 문제 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미국의 자립생활운동가들이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바, 자립생활과 활동보조서비스에 있어서 이용자(소비자)의 선택권이 매우 중요한데 이를 지켜내고 관철하기 위해서는 자립생활센터와 같은 기관의 개입과 관여가 매우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계서비스의 완전한 시장화는 장애인과 같은 특수한 유형의 소비자의 선택권을 적절히 보호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검증된 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인터뷰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한 가지는 미국의 많은 자립생활활동가들이 미국의 자립생활센터들이 너무 많이 활동보조서비스에 의존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활동보조서비스가 많은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에 매우 필수적인 제도이며 또한 그로부터 자립생활센터의 재정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지만 또한 자립생활이 단지 서비스의 제공만이 아니라 권익옹호, 역량강화, 그리고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변화와 참여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활동보조서비스는 매우 제한된 활동임이 분명하다는 인식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우리에게도 비슷한 바, 이는 한편으로 우리의 자립생활운동이 매우 빠른 속도로 선진 자립생활운동의 모습을 따라간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 미국의 자립생활운동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따라 배울 수 있는 모범이 없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원컨대 우리의 자립생활활동가들이 자립생활의 완전한 실현을 위한 보다 폭 넓은 시야와 행동계획을 갖기를 바란다.

 3. 이번 총회에 참석한 미국의 자립생활 활동가들과 사회복지사들의 연령이 매우 높았다. 그들은 대부분 50 중후반이었고 자립생활계에서 활동한 기간도 10년 이상으로 매우 길었다. 또 개회전 행사의 중요한 내용이 젊은 장애인 활동가들을 교육하고 격려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역으로 미국 자립생활운동의 연륜이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 고령화가 걱정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항상 모든 운동이, 우리의 자립생활운동도 시대를 초월하는 영구적인 문제의식이며 따라서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장애인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것으로 여기지만 세상의 많은 운동들은 매우 제한적인 시기와 장소에서 나타나고 활성화 되고 사라져 간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자립생활운동도 더 젊은 장애인들을 위한 제도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자립생활운동이 격고 있는 젊은이들의 외면이라는 문제에 부딪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총회에 참석한 미국의 자립생활 활동가들 사진


 4. 미국의 자립생활활동가들은 자립생활운동을 설명할 때 항상 consumer-소비자라는 단어를 썼다. 활동보조서비스를 설명할 때도 항상 소비자의 선택권이라는 말을 붙여서 썼다. 이는 미국의 자립생활운동이 그들의 운동적 기초로서 장애인의 소비자적 특성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느껴졌다.

 반면에 우리의 자립생활운동에서는 이용자, 장애인의 결정권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쓴다. 두 개의 단어를 비교해 보면 소비자, 소비자의 선택권이라는 단어가 비교적 역사적인 개념을 가진데 반하여 이용자, 장애인의 선택권이라는 단어는 보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개념을 가진다. 소비자라는 단어에는 공급자라는 단어가 대비되며 이는 근본적으로는 소비와 공급이라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한 측면을 반영하는 단어이다. 반면에 이용자라는 단어는 어떤 재화나 서비스, 혹은 물건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역사적 함의가 적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비자’라는 개념은 그리 존중 받지는 못해왔다. 이는 우리가 현대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생산의 패러다임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재화의 가치가 근본적으로는 사용가치에 있고 그 사용가치를 만들어내는 힘이 노동에 있다는 사고는 ‘소비’는 항상 부차적인 것이며 노동의 가치를 시장에서 왜곡하는 요소로 여기게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재화를 생산하는 측과 소비하는 측이라는 대립 구조를 통해서 세상을 보면 우리는 자본과 노동이 생산하는 측이라는 보다 강고한 유대성을 갖고 소비자는 이들의 강고한 유대에 의해 선택을 강요 받는 진정한 대립물이라는 속성이 드러나게 된다.

 비록 ‘소비’가 소비하는 자들의 안정적이고 일관적인 속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자립생활운동이 ‘소비자’로서의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자본도 없으며 노동도 공급할 수 없는 타자로서의 장애인의 문제적 속성을 정확하게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자립생활운동도 장애인의 ‘소비자’적 성격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인식에 도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의 최대 노조인 AFL-CIO가 활동보조서비스인들의 노조 조직을 위해 활동을 시작했다는 미국 자립생활관계자의 우려는 이제 장애인의 소비자성과 활동보조인의 노동자성의 구체적인 대립이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5. 미국의 자립생활센터가 어떤 구조적 민주성과 안정성을 갖고 있는가가 이번 총회를 통해 알고 싶은 중요한 요소였는데 미국의 자립생활센터들은 미국의 주식회사 제도와 매우 흡사한 구조를 채택하고 있었다.

 미국의 주식회사의 이사회는 우리의 이사회와 아주 다른 역할을 하는데 보통 이사회( = Board of Directors : 옛날 자본주의 초기에는 사람들이 모일 때 널빤지 같은 것을 가운데 두고 <오늘날 책상 같이> 모여 앉았다고 해서 보드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고 함. 이사는 board member, 이사회 의장은 Chairman 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보통 이사들은 땅바닥에 앉고 의장만이 간신이 의자에 앉아서 이런 이름이 되었다고 함)는 조직의 전략적 방향을 결정하고 예산을 승인하고 재정과 활동을 감사하고 특히 운영임원들 <보통 CEO, CFO 등등>을 선출하는 역할을 할 뿐이며 구체적인 운영은 운영임원들에게 일임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자립생활센터들도 미국의 이사회와 같은 위원회(편의상 운영위원회라 번역함)를 두고 위원회의 구성은 매우 엄격한 민주적 원칙을 적용(임기, 구성원의 비중과 자격 등)하는데 반해 위원회에서 임명된 운영책임자(소장, 사무총장 등 다양하게 번역됨)는 대부분의 경우 아주 오랜 기간 일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미국의 운영구조가 꼭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으나 우리의 자립생활센터들도 구조적 안정성과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관적이고 통일된 형태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는 또한 장기적으로 자립생활센터들의 대외적 공신력과 영향력의 확대에도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April의 총회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 사진

 6. 미국의 장애인 관련 정책들은 기본적으로 보건복지부 산하의 재활국에서 관장하고 있다. 이번 총회에 참가한 자립생활 활동가들은 재활국의 장애인 자립생활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문화 등에 대해 많은 불만을 제기하였다. 또한 대안으로 재활국 이외에 자립생활국을 만들려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직 그 실현 가능성을 알기는 쉽지 않지만 미국에서 자립생활국이 만들어 진다면 이는 자립생활운동의 또 다른 성취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7. 이번 April의 총회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느낌은 우리의 자립생활운동이 비록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 양상이라는 면에서 미국의 자립생활운동과 아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어떤 면에서 이는 우리 자립생활운동의 성과이기도 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우리 자립생활운동이 어떤 단계의 끝에 와 있다는 느낌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 한국의 현대사는 유럽이나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사회를 따라 배우는 역사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따라 배우기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지만 실천적으로 효율성이 매우 높은 방법론이다. 우리의 자립생활운동도 큰 들에서 보면 이 궤적을 많이 닮아 있다. 우리는 그들의 철학과 방법론을 배워왔고 불과 10년의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이 이룩한 많은 것들을 이루어 냈다.

 비록 우리의 자립생활운동이 많은 부족한 점들을 갖고 있을지라도 어쩌면 이제 우리가 보고 따라 배울 모범이 없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격고 있는 문제를 미국의 자립생활운동도 격고 있고 딱히 해결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제 우리의 자립생활운동의 지도자들과 활동가들에게는 우리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우리에게 닥친 난제들을 해결해야 할 시대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에게 더 많은 노력과 공부와 지혜를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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