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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과 소통의 잔치 제2회 나눔 연극제 김은균(

2006 나눔연극제 포스터 

 2006년 세모의 풍경은 여전히 메마르고 이제는 세월의 흔적까지 더해 삭막하다 못해 쓸쓸하다. 잎새를 떨군 나뭇잎에 걸린 초생달의 시린 풍경처럼…….

 올해 초 한국장애인 문화협회 최부암 부회장과의 만남으로 나눔 연극제를 맡게 되었다. 3월부터 나눔 연극제 기획팀이 구성이 되고 3월부터 작품선정에 들어갔었는데 장애인이 공연을 하거나 장애를 소재로 한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작품선정에 들어갔다. 대한민국의 웬만한 공연은 보고 있는 덕분으로 이 작업은 일이라기보다는 즐거운 놀이였다. 그러한 가운데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예술을 통한 나눔을 삶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연극제 진행과정에서 가장 어려웠었던 점은 공연장을 확보하는 일이었었는데 이미 웬만한 공연장은 작년으로 대관결정이 난 상황이었고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편의시설을 가진 극장은 서울에서는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대부분의 대학로의 극장들은 지하에 자리 잡고 있어 애초부터 장애인들이 접근하기에는 불가능한 구조였다. 그러던 중 대학교는 학사 일정이 6개월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실습장을 끼고 있는 몇 학교를 타진한 결과 모 여자대학 아트센터는 총장실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어 6월 중순 대관신청을 통보받고 서류작성을 마쳐서 일이 순조롭게 되는 듯싶었는데 막판에 학기직전 교수회의에서 공연예술센터를 담당하는 몇 분의 교수들이 얼토당토 않는 이유를 내세워 철회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모든 행사나 축제는 공연장을 잡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연극의 한장면
 이후 작품선정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극단 휠의 <시선>, 트러스트 무용단의 <해당화>, 부산 농아인 극단의 <배비장전>, 그리고 한국장애인 문화협회 ‘함께 걷는 사람들’의 <막차 탄 동기동창> 이렇게 네 작품이 선정이 되었는데 모두가 당사자에 의한 이야기거나 기존의 작품을 자신들에 맞게 고친 것들이었다. 우리의 현황에서 장애인들이 연극을 통하여 사회에 발언하기는 아직도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대개 한 나라의 복지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 불문율인데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아직 대한민국의 경우는 많이 모자란다. 장애 등록 인구를 200만 명 정도로 추산해 본다면 그만큼의 사람을 거리에서 보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갔을까?”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아직도 집안에 갇혀 있는 것이 한국 장애인의 현주소인 것이다. 장애인의 문제는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한 면에서 장애인들의 문화향수권이 제기된 것이 최근이지만 그것의 요구는 매우 거세고도 구체적이다. 더욱이 연극의 경우 공동체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그 시작은 쉽지 않는 일이었다. 연극을 통한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는 꾸준히 있어왔으나 이번 나눔 연극제는 그동안 일회성으로 그쳐왔었던 장애인들의 문화 참여가 하나의 축제의 성격으로 묶여지는데 특징이 있다. 기존에도 극단 <끼판> 그리고 <휠(wheel)>, <어우름>,여성장애인 중심의 공감 <허리>등의 단체들이 연극이라는 매개체로 연극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왔었다.
이러한 꾸준한 시도들이 마침내 사회적인 파장을 이끌어 내었고 비록 아직은 내딛는 걸음이지만 이제는 하나의 대안문화로서 조심스레 그 단초를 열고 있다. 이번 연극제의 목적은 사회적으로 약자이며 더욱이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집단인 장애인들이 연극을 통하여 사회에 발언하고 생산자로서 세련된 예술창작을 할 수 있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작품에 주변인으로만 머물렀던 장애인들이 역할에만 맞는 배역이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자신만의 장점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해가 저물면서 본의 아니게 ‘나눔’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보면서 지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나눔’이라는 것이 참으로 오묘한 법칙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나눈다는 것은 재화의 감소를 의미한다. 가령 10을 한사람이 취하면 10이지만 두 사람이 취하게 되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자명한 이치. 하지만 마음을 나누는 것은 그 반대로 감소가 아니라 넉넉함을 안겨주는 것이다. 묘한 아이러니지만 그 안에는 간과할 수 없는 진리를 담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결핍은 나눔을 통해서 보완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부족한 존재임을 알고 그것을 메우는 과정에서 풍성함을 맛본다는 아름다운 섭리!
 역시나 다사다난했던 2006년도, TV는 그들의 이야기로 우리들을 불러 모으려 하고 방향 잃은 정의는 낙엽처럼 뒹굴고 ‘양극화’는 이미 생활의 법칙으로 자리 잡은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백화점의 쇼윈도우는 빨강색으로 송년감사 Sale을 알리고 거리에서 들리는 구세군의 종소리는 여전히 분주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고 우리는 속을 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다면......” 하고 또 다시 새해를 다짐한다. 그리고 그 다짐이 희망과 나눔이기를 다시 한 번 소망하고 소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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