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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문의 영화이야기


사실로서의 다큐멘터리 디어평양 최강문(을벼출판사대표)

 1. ‘다큐멘터리는 사실의 기록을 필름을 통해 재조합함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예술적 영화이다.’ 세계 최초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북극의 나누크』를 만든 로버트 플레허티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이렇게 정의했다. ‘사실’과 ‘재조합’, 그리고 ‘창조’. 변증법의 ‘정―반―합’을 연상케 하는 그의 정의를 따르자면, 다큐멘터리는 단지 기록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수많은 사실들이 모두 모인 세계가 카메라의 앵글(감독의 시선이기도 하다)을 거치면서 모습을 달리 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는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라고 했다. 다큐멘터리에 투영된 세상 또한 비트겐슈타인의 정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감독의 시선에 비쳐진 사실은 사실일까, 아니면 사실과 다른 또 다른 사실일까? 끝없는 논란만이 남을 뿐이다.

디어평양 포스터
 2. 지난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우리 사회는 또 한 차례의 홍역을 겪어야만 했다. 60년을 훌쩍 뛰어넘은 분단 체제 속에서도 따스한 봄소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2006년. 가뜩이나 갈등과 분열이 증폭되고 있는 마당에 터진 북한의 핵실험은 DJ의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한다고 자처했던 노무현 정부조차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끔 했다. 다시금 북한에 대한 제한적 폭격 이야기가 솔솔 미 정가에서 흘러나오고, 독도 영유권 논란 이상으로 납북자 문제에 끈질기게 매달리던 일본은 마침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 되었다. 몇몇 언론에서는 ‘일촉즉발 전쟁 상황을 앞두고서도 한국 국민들은 사재기를 하지 않는다’는 기괴한 외신을 소개하며 안보불감증 운운하기에 이르렀다. 정치권 일각에서 ‘전쟁 불사’라는 표현이 오고간 것도 사실이다. ‘정부?여당 내의 친북 좌파를 색출하라’는 구호가 시청 앞 광장에 외쳐지던 2006년 가을, 평양을 다룬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것도 패션의 중심가 명동에서 상영되었다. 『디어 평양』!

 
 3. 일제 강점기 시절, 고향 제주도를 떠나 일본 오사카에 정착한 아버지. 일제의 패망과 함께 아버지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한국 사람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조선 사람으로 살 것인가…. 그러나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다. 아니, 방금 이 문장은 현재진행형으로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고집이라면 고집이고, 신념이라면 신념인 아버지의 노선은 60년 남짓 흐른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70년대 초 세 아들을 귀국선에 태워 북으로 보냈다. 비틀즈와 클래식을 사랑한 큰아들을, 코밑수염이 이제야 가뭇가뭇한 둘째를, 그리고 사춘기도 채 지나지 않은 셋째아들마저…. 어머니 또한 총련의 여성조직 간부였다. 누가 봐도 손색없는 혁명가 집안이었다. 총련계 민족학교에서 사상교육을 받았음에도 마냥 어긋난 막내딸을 제외하면. 『디어 평양』은 바로 이 간극에서 출발한다..


 4. 카메라는 늙은 아버지를 바라본다. 오사카 조선인 밀집지역의 조그마한 가옥, 조촐하기 그지없는 새해 차림상을 놓고 카메라는 묻는다, 고향 제주와 평양 중 어느 쪽이 더 좋냐고. 6살에 오빠들을 북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딸이 건네준 세뱃돈에 마냥 즐거워하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조선인, 한국인, 일본인 중 어느 신랑감이 좋냐고. 민족학교의 모범생이었던 딸, 졸업 후 민족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출신성분 좋은 그 딸이 두 평 남짓한 방에 러닝셔츠 바람으로 드러누운 아버지에게 묻는다. 서른 즈음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딸이 자전거를 타고 모임에 가는 아버지를 따라가며 묻는다. 사상의 고향에서 진갑 잔치를 치르기 위해 떠나는 아버지의 훈장 앞에서 묻는다. 서울을 가보고 싶어 하는, 비수교국인 일본에서는 난민 지위에 불과한 조선적을 버리고 대한민국 국적을 얻고 싶은 자유주의자 딸이 묻고 또 묻는다. ‘아버지, 조국이 무엇인가요?

 5. 가족과의 불화 끝에 집을 뛰쳐나간 딸이 있다.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친다. 아니, 세월이 흘러 가족은 날로 위태로워진다. 건강 문제든, 재정 문제든. 어느 강심장, 철면피가 잃었던 가족의 정을 회복하려 하지 않겠는가.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그저 평범한 홈비디오다. 여느 집에나 하나쯤은 텔레비전 받침대 구석에 하나 처박혀 있음직한. 액션과 섹스, 엄청난 양의 돈다발이 적당히, 아니 좀 더 짜릿하게 섞인다면 땅콩 한 봉지 사놓고 먹으면서 보는 삼류 영화쯤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6년이다. 60여 년을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아버지는 자본주의에 기우는 딸과 이제 화해하려 한다. 아버지 신념의 날 끝이 무디어진 탓일까? 카메라는 애써 이 질문을 외면하고 만다. 뷰파인더에 잡힌 피사체가 바로 아버지이기 때문에. “조선적을 버리고 대한민국 국적을 얻어도 좋다”는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있고, 딸은 울부짖는다. “아버지, 휠체어라도 타고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 평양으로 가요.”

 6. 모르겠다. 북한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려 억압받는 북한 동포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볼지 정말 모르겠다.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간첩 잡는 국가정보원에까지 친북좌파가 침투해 있다며 발본색원을 외치는 이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평할지 모르겠다. 서울 시내, 그 많고 많은 멀티플렉스들 중에 이 영화를 상영하는 단 두 곳의 극장 앞에서 몇몇 단체들이 ‘사실을 왜곡한 빨갱이 영화’ 운운하며 피켓시위라도 벌이지 않을지 또 모르겠다. 물론 서둘러 가지 않으면 피켓만 준비한 채 시위를 못할 지도 모르겠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자랑하는 2006년의 한국영화계에서도 이런 영화는 고작해야 1~2주 상영하다 그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영화가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넷팩상이란 걸 받았고,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는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바로셀로나아시아영화제에서는 최우수 디지털시네마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7 . 그러고 보니 닮았다.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장을 연 『북극의 나누크』가 북극 에스키모의 일상을 담았다는 점에서, 측량기사 출신의 감독이 혼자서 촬영하고, 감독하고, 편집했다는 점에서…. 『북극의 나누크』는 극적 구성을 위한 기법을 사용한 까닭에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짧게 짧게 촬영해서 덕지덕지 편집하던 이전의 기법에 비해 길게 찍고 길게 편집하는 이른바 ‘롱테이크 기법’도 처음 시도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관객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전달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나누크, 스크린에서 재조합되고 창조되다. 그럼 이 영화는? 새로운 기법은 중요하지 않다. 모르고 있었든지, 잊고 있었든지, 그 간극 속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래, 그림이 하나의 사실이듯, 다큐멘터리도 분명 하나의 사실이다. 『디어 평양』, 107분, 양영희, 2006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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