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단 메뉴 바로가기
  2. 본문 바로가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야기 프리즘
HOME > Webzine 프리즘 > Webzine 프리즘
본문 시작

webzine 프리즘

프리즘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분기마다 발간하는 웹진입니다

지난호바로가기 이동
컬쳐포우

문화에세이


여행을 떠나자 김효진(한국DPI 여성위원회 위원장)


 조제의 겨울바다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주인공 조제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여성이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혹은 삼십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에게 그 겨울의 바다는 첫 여행지였다. 연인 츠네오의 집에 인사하러 가던 길에 그들은 행로를 바꿔 바다로 향한다. 영화는 “겨울여행은 무척 추웠다. ... 바다. 부서진 조개껍질. 그때가 그립다”라는 츠네오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츠네오의 등에 업혀 있는 여자는 다름 아닌 조제... 매일 새벽 할머니가 이끄는 유모차를 타고 텅빈 거리를 빠꼼히 쳐다보면서 바깥세상과 교류하는 것이 전부인 여자. 할머니가 주워다준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여자. 버림받음, 숨겨진 존재, 무학, 무직, 외부와의 단절, 그러나 무한한 정신세계와 주체적인 자아 등... 장애여성의 거의 모든 것이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캐릭터이기에 “잊혀지질 않아. 그 겨울 바닷가”라는 영화 포스터의 문구가 전혀 진부하지 않을 수 있었던 영화로 기억된다.

 생애 처음이자 단 한 번뿐인 여행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흔하디흔한 미담이나 눈물샘 자극하는 감동의 드라마가 아니다. 첫 여행에서 돌아온 뒤 조제는 이미 예감했던 바대로 연인을 떠나보낸다. “네가 떠나고 나면 난 길 잃은 바다 속 조개처럼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돌겠지. 그래.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렇게 나쁘진 않아." 그리고 조제는 마지막 장면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혼자의 삶을 시작한다.

내 주변에는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의 여주인공처럼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름대로 치열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수많은 ‘조제’들이 있다. 그들 ‘조제’들 중에는 아직도 생애 단 한 번뿐인 여행으로 만족해야 하는 수많은 ‘조제들’이 있다. 절친한 후배 장애여성의 경우 그녀도 조제처럼 스무살이 넘어 처음으로 바다에 가봤다고 했다. 여름인지 겨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서는 스무살이 넘었다는 사실이 중요할 것 같다. 양 목발을 사용하는 정도의 그리 중증의 장애도 아닌데, 부모와 형제들의 도움으로 학교에 다니는 것만도 감지덕지할 뿐 그 이상은 꿈도 꿔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남들 다 가는 수학여행도 따라가지 못했으니 바다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셈이다. 그녀 한 사람의 특별한 사례라고 하기엔 장애를 가진 우리들에게 너무도 보편적인 현상일 것으로 여겨진다.


 여행 프로그램 유감

 우리 장애인들에게 여행은 아직도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심지어는 비장애인에게 일상에 불과한 외출(쇼핑, 병원, 친지 방문, 출퇴근 등을 모두 포함)을 하기 위해서조차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는 현실이므로. 그런 현실을 감안해 장애인들에게 외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이 꽤 많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우리 장애인은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이 짜놓은 스케줄에 일방적으로 맞춰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더구나 그마저 일 년에 고작해야 한두 번에 불과한 실정이고... .
특히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돌아오면 우리 장애인들은 온갖 행사에 동원되거나 놀이공원이나 고궁 등 나들이행사나 축하공연에 초대를 받는다. 그리고 평소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없던 언론들도 다투어 장애인 특집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방송에 나오는 불쌍한 장애인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마냥 눈물을 흘리는 한편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저렇게 태어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저런 사람들도 있는데 난 그래도 행복한 편이지.’
그러면서도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저 많은 장애인들은 평소 무엇을 하고 살아갈까?’ ‘왜 우리 주변에는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걸까?’
사람들은 우리 장애인들이 일 년의 단 하루가 아니라 일 년 내내 우리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만 같다. 게다가 우리 장애인들이 일 년 내내 사회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하는 교육의 권리, 노동의 권리, 이동할 권리 등등을 누리지 못해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는 관심도 갖지 않으려고 하고 오로지 일년 중 하루나 이틀 외출 프로그램을 통해 위로받거나 특별한 관심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고 여기고 있나 보다.
하지만 우리는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어야 한다. 외출은 물론 여행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과 함께 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더 이상 생애 단 한번뿐인 여행이 미담이나 감동의 드라마로 부각되는 것에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이다.


 겨울바다와 나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유독 추위를 타는 내가, 그것도 눈이 올 때마다 뼈마디가 쑤시는 통증에 시달려야 하고, 오도 가도 못하는 재가장애인 신세가 되어야 하는 내가 언제부터 어떻게 겨울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길고 길었던 겨울방학이 좋았던 것 같다. 겨울 내내 힘들게 학교 가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매일 늦잠 자고, 아랫목에 누워 동화책을 보다가 심심하면 낮잠도 즐기면서 지냈다.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다가 이런 공상, 저런 공상에 빠져보기도 하고 제법 심각한 생각도 하면서 느리게나마 ‘성장’할 수 있었다. 밤마다 가족들끼리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둘러앉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고구마, 무 등을 깎아 먹는 즐거움도 컸다. 무엇보다 겨울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활동이 움츠러드는 계절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좋았던 것 같다. 다른 계절은 다들 분주하고 활발한데, 나만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반면 겨울엔 친구들도 나처럼 활동이 굼떠지곤 해서 소외감이 덜했다.
좀 더 자라서는 학년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는 계절이었던 탓에 겨울이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점점 어른이 되어 가면서 이상하게도 겨울에 활동량이 많아지곤 했다. 잘 안 풀리던 일도 겨울이 되면서 조금씩 해결이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거나 내내 연락이 소원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많아지거나 하는 일이 생겼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이것이 나의 사이클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막연한 기대감이 생기곤 한다. 올 겨울도 좋은 일이 생기지 않으려나?
바다만 해도 그렇다. 나는 여름바다와 그리 익숙하지 않다. 뜨거운 태양 아래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 끼이는 것은 내키지가 않아 가끔씩 겨울바다를 찾았다. 처음 찾은 겨울바다는 고등학교 때 였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큰언니가 데려다준 대천 앞바다였던 것 같다. 그 뒤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때 친구와 단둘이 여행을 떠났었고, 남쪽의 겨울바다를 실컷 쏘다녔었다. 서른 중반에 자동차가 생긴 뒤부터 겨울바다는 내게 더 친숙해졌다. 아마도 전부는 아니겠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쓸쓸한 겨울바다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는 스무 살, 서른 살 이전에 바다를 본 드물게 운 좋은 장애인이었지만, 수많은 인파들이 휩쓸고 간 뒤의 겨울바다만을 온전히 차지하는 것으로 만족하곤 했다. 그런데도 겨울바다를 만날 때마다 나는 마치 꿈속에서나 그리던 연인의 품에 안긴 듯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곤 한다. 겨울바다는 내게 연인이다.


 느티나무 동호회

 나는 ‘느티나무(ntree)’라는 장애인 여행과 친목 모임의 회원이다. 사실 회원이라고 밝히기에도 민망할 만큼 회원의 의무를 전혀 하고 있지 못하고 있긴 하다. 처음 회원으로 가입한 5년 전쯤 천리안 동호회 모임이었을 때 채팅 몇 번 하고 수덕사와 대천 여행, 여주 신륵사 여행, 그리고 용인 에버랜드에 합류했던 것이 전부였으며, 최근에는 정기모임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스스로를 느티나무의 회원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으려니 내심 마음먹고 있다. 그리고 느티나무 식구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나와는 인연이 깊은 분들이어서 언제나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이다.

 느티나무가 다음 까페를 개설해놓고 매주 정팅을 하고 일 년에 서너 번 쯤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영모님과 제이님의 헌신 덕분이다. 영모님은 모 대학교의 교직원으로 장기 근속하다가 명예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으로 장애여성과 결혼한 비장애인이다. 그분의 ‘장애인사랑’은 장애여성인 아내조차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깊고 구체적이다. 나 역시 이십대 때 길거리에서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이후 그분과 지금까지 근근히라도 연락이 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분의 꾸준한 ‘장애인사랑’ 덕분이었다. 사실 나는 ‘장애인사랑’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데, 영모님에 대해 설명할 때는 이 말 외에 다른 적합한 말을 찾지 못하겠다. 그분은 한번 마주친 장애인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어떤 식으로든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주고 관계를 맺곤 한다. 사실 사람에게는 똑같이 하루 24시간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 탓에 우리네 보통 사람으로서는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늘 피곤하고 지치기 마련인데 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불가사의이다.

  한편 제이님이라는 분은 항공사에 근무하던 중 산재를 당해 휠체어를 타게 된 분으로 느티나무의 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정모를 계획하고 숙박과 이동 등 모든 만방의 준비를 하고 회원의 참여를 독려하는 일은 모두 그분이 맡고 있는 듯하다. 한마디로 다음 까페 관리와 회원 관리 등 일상적인 일은 대부분 영모님이 꼼꼼하게 챙기시고 진두지휘가 필요한 일은 제이님이 도맡고 있다고 해야 할까.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그렇다고 대가가 생기는 일도 아닌 일에 그분들은 소홀한 법이 없다.

  사실 느티나무 회원들의 활동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들도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부르주아 모임이라는 것이다. 맛있는 것 사먹으러 다니고 전국의 좋다는 곳은 다 찾아다니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여행이니 문화니 하는 것쯤 사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줄 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먹고 살기가 힘들수록 우리가 무엇을 위해 먹고 사는 것인지 되짚어볼 수 있었으면 한다. 느티나무 회원들은 그리 돈 많은 사람들도, 그렇다고 시간이 많은 사람들도 아니다. 대부분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이니 특별히 여유로운 삶일 리 없다. 그런데도 느티나무 회원들은 수시로 만나 맛있는 것 사먹고, 일 년에 서너 번 쯤은 여행도 다니며 살맛나게 살아간다. 장애인에게 너무도 팍팍한 세상이기에 우리에게는 휴식과 재충전이 더욱 절실하니 이보다 더 좋은 만남이 있을까?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여행을 하고 싶어도 접근성과 이동성의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점 때문에 망설이곤 한다. 느티나무 회원은 그런 문제를 안고 혼자서 끙끙댈 필요가 없다. 휠체어 탄 사람도 접근 가능한 곳을 찾아 물 좋고 산 좋은 곳으로 얼마든지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이다. 비용에 대한 부담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조금 여유 있는 분들이 기꺼이 후원금을 내는데다가(이분들의 주머니 사정이 남달리 풍족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누고픈 마음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제이님의 마당발 덕분에 전국 방방곡곡의 여행지를 저렴하고 편안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느티나무가 천리안 동호회로 시작해 20년 가까이 장수하며 모임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를 모두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행하기 어려운 장애인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스스로 여건을 만들어 가는 느티나무 같은 모임의 존재가 참으로 고맙다. 그리고 부르주아 소리를 듣든 말든 나는 제2, 제3의 느티나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무 살, 서른 살에야 처음으로 바다를 본 ‘조제’ 같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어졌으면 한다. 올 겨울엔 우리, 여행을 떠나자. 넓디넓은 바다를 마주하고 크게 심호흡이라도 하면서 일상의 고달픔을 툭툭 털어버리자. 우리에게 ‘무작정’은 아직까지 무리겠지만 지금부터 준비하면 올 겨울을 넘기기 전에 바다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5년전쯤 느티나무 회원들과 대천앞바다에서 찍은 사진

프린트하기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