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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슈의 변방에서 여성을 외치다 신희원 ((사)한국여성장애인연합 사무처장)

 1990년대 중반 무렵 여성장애인들은 앞선 여성운동 또는 장애인운동 속에서도 여성장애인에 관한 논의나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에 문제의식을 지니고 스스로 자조모임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소리로 차별과 억압의 경험을 세상에 알리고 존재를 드러내며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변화의 흐름 속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여성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지역조직의 활성화와 연합조직의 필요성을 공감한 전국의 여성장애인들은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하 한국여장연)을 창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사회 여성장애인들이 당당한 권리를 찾고 누리며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한 전국 차원의 여성장애인 인권운동연합단체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탄생은 장애인 속에서성인지적 관점에 의한 것이었고 여성속에서 차이의 정치학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차이의 정치학은 비장애 남성중심의 사회구조 속에서 구성된 기준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도 비장애여성과 여성장애인에게 있어 차이와 다름이 존재하는 이유에 근거한다. 나아가 그 차이가 다양성으로 인정되지 않고 차별로 전환되어 삶의 주기가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른 접근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필요성의 대두와 함께 적극적인 해결방안이 강도 높게 요구되었다.
 우리사회 여성장애인은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되지 않았을 뿐더러 극심한 차별로 인하여 그 어느 집단보다 열등한 존재로서 시혜와 은폐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이러한 차이의 선상에서 드러나는 차별에 대한 문제를 조순경과 Bell Hooks는 다음과 같이 드러내고 있다.

 구체적인 개인들과 집단들 간의 차이 가운데 특정한 차이들이 차별로 전환되는 것은 그 차이가 위계성을 띠게 될 경우이다. 그리고 서열에서 낮은 위치를 차지하는 특성을 가진 집단은 열등한 존재로, 또는 부인되어야할 존재로 간주된다. 이러한 범주화 과정을 통해 분리되고, 배제되고, 통제되어야할 개인과 집단이 정해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시 그들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강화되고 완성된다. 차이의 서열을 정하는 기준은 대부분 이미 권력관계에 있어서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집단이 기준을 설정하게 되며 그 기준도 그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이미 소외되고 배제되어 그 존재가 인정받지 못하는 집단은 열등한 존재로 보호와 통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조순경, 2002).
 Bell Hooks는 기존의 페미니즘이 남녀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시키고 현실 속에서 여성이 접하는 불평등한 조건과 차별적 지위를 많이 드러내지만, 상류층 여성과 하류층 여성의 차이, 백인여성과 흑인여성의 차이, 기혼 여성과 독신여성의 차이 등등 여성들 내부의 다양한 차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Bell Hooks, 2000).

 한국여성장애인연합운동은 이러한 비판적 입장에 근거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주의가 여성장애인과 비장애여성과의 차이 또한 아무런 말을 해주지 못하는 것이 그러하다. 즉 여성장애인과 비장애여성의 차이, 예를 들면 기존의 비장애여성에 관한 성폭력 이론이나 문제해결을 위한 전략들이 여성장애인 성폭력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없으며, 그 차이에 의한 여성장애인 성폭력의 특성이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성장애인이 비장애여성 보다 더 많은 폭력에 노출되거나 더 열악한 환경에 있는 것은 이러한 차이에 의한 차별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생애주기에서 여성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교육과 고용에서 더욱 극한 차별의 현실에 놓이는 것과 결혼과 비혼이 선택이 될 수 없는 조건 등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장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기인한다.
 여성주의가 가부장제의 관념과 상식에 도전해 왔듯이 같은 여성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장애로 인해 이어지는 각종 차별을 경험하는 여성장애인들은 여성주의 안에서 차이의 정치학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투쟁을 해온 것이다.
 1999년 창립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5년째 여성장애인의 교육권운동.폭력예방근절운동.모성권 운동.자립생활운동.법률 제, 개정 운동.정책개발과 정책연구 운동.건강, 생활체육 운동.직업고용.국내, 국외 연대 운동.한국여성장애인대회 등 한국여성장애인연합운동을 통해 꾸준히 펼쳐오고 있다.
이러한 여성장애인운동의 성과에 힘입어 미흡하게나마 장애인복지 및 관련 법률 등에서 여성장애인 관련법조항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법」,「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여성발전기본법」등은 여성장애인의 권익보호와 역량강화, 사회참여 촉진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고 여성장애인이 장애와 성(性)을 이유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장애인이 처한 차별의 실태를 들여다보자.
2008년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초등학교 이하의 학력이 남성장애인 37.0%에 비해 여성장애인은 67.3%로 남자의 약 2배 수준으로 여성의 저학력 비율이 높다.
경제활동 참가율 역시 25.48%로 남성장애인의 취업자 비율 52.48%에 비해 절반수준으로 매우 낮다. 여성장애인가구의 소득수준을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전체 여성장애인의 3분의 1이 1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으로 여성장애인의 빈곤화가 가중되고 있다.
여성장애인에 관한 각 통계에서 보듯이 여성장애인은 교육수준, 취업률, 소득수준이 매우 낮으며 전 생애주기에 걸쳐 기본적인 권리보장의 기회가 박탈되었을 뿐 아니라 차별과 폭력의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년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여성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살인과 화재사건 계속되는 자살, 끊이지 않는 성폭력과 가정폭력 등 극악한 인권침해는 우리사회 여성장애인이 처한 빈곤과 폭력 차별과 소외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공부하고 일하고 엄마가 되고 존중받고 폭력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안전하게 사는 일이 그렇게 욕심이라면 무언가 병들어도 한참 병든 사회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극악한 차별의 현실이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1990년대까지 여성장애인은 집단적 정체성을 확인하지 못하였기에 관련 정책 및 제도, 서비스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한국장애인인권헌장, 장애인복지법,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등에 반영된 여성장애인 관련 조항은 모두 전문가 혹은 남성장애인들이 대변해주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권리협약에 이르러서야 여성장애인들은 스스로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33조와 장애인권리협약 제6조에 단독조항을 반영하였고, 기타 관련 조항에도 여성장애인의 요구와 경험을 담는 성과를 내게 되었다.
하지만 정책전달체계에서 여성장애인의 자조단체는 여전히 소외되어 있으며, 아직도 각 부처와 지자체는 장애 관련 각종 기관, 복지관, 시설들과의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장애인 정책 및 서비스가 당사자이자 소비자인 여성장애인의 욕구와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공급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장애인은 단지 정책과 서비스의 대상자일 뿐 역량강화(empowerment)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
 제2차 아태장애인10년 행동계획안(비와코 새천년행동계획안, 2002)에 의하면 10년간 실천해야 할 과제 7개 영역 중 두 번째가 여성장애인과 관련된 것으로서 여성장애인이 자조단체를 통해 역량강화 되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도 제6조에서 각국 정부가 여성장애인들의 완전한 발전, 진보 및 권한강화를 보장하기 위하여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여성장애인 역량강화는 자신들을 대표하는 자조단체를 통해 실천되며, 사회 각 영역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로 귀결되므로 여성장애인정책이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하려면 여성장애인 자조단체를 적극 육성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전달체계가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복지 프로그램의 대상자로만 머물렀던 여성장애인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통해 조직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힘을 길러 궁극적으로 자신들 삶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에 여성장애인이 그 존재와 정체성을 드러낸 지, 여성장애인 인권운동의 역사가 시작된 지 20여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여성장애인들의 절절한 외침이 선언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피부에 와 닿게 실천되어야 한다.
차이와 다름을 존중하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고려한 여성장애인지적 관점의 광범위한 사회 인식 변화와 법과 제도적 노력 이에 대한 성별예산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모든 정책결정과정에서 여성장애인의 대표성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이슈의 중심에 가장 약자이면서 소수자인 여성장애인의 관점을 고려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는다면 여성장애인은 우리사회의 희망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고, 변방의 목소리로 소외시킨다면 지금처럼 사회적 살인과 폭력의 희생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여성장애인의 경고의 메시지가 희망의 메시지로 변화하는 건강하고 성숙한 공동체를 위하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그 선택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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