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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함께하는 교육 심은보 (죽백초등학교 교사)

 봄꽃들 망울망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직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이제 곧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며 온 누리를 화사하게 밝힐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제 안에 다채롭고 고운 빛깔 고이 간직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터뜨리며 성장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봄꽃 같은 가능성들 품고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작은 학교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지난 해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서른 명과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은별(가명)이와 영수(가명)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은별이는 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다녀야 하는 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고, 영수는 비언어성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과 함께 현실 속에서 부대끼며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아이들 역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서로의 다름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한 해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인권교육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인권과 평화 감수성의 씨앗들을 뿌려줄 수 있는 한해로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나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너무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고, 그리고 나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너의 소중함까지도 함께 배워 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 말입니다. 나에 대한 예의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워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권교육 아닐까 싶습니다.

학급을 맡고 나서 이 두 아이들을 전담마크해서 도와주던 착한 짝꿍들을 없앴습니다. 살짝 다를 뿐인 이 친구들을 무슨 과제 대하듯 하는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리며 배워가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신 우리 모두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먼저 손길을 내밀어 도와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수시로 던졌습니다. 교실 안에서 어떠한 이유든 누군가 소외되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고 말입니다. 모둠을 정하든, 무엇을 하든 아이들에게 맡겼고, 소외되는 아이들이 생겨나면 무조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은별이와 영수가 가진 장애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친구들과 생활 속에서 극복해야 했던 것이 달랐기에 이야기를 나눠서 펼쳐볼까 합니다.

 먼저 은별이 이야기입니다.

은별이는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학기 초부터 체육활동이며 체험활동들도 모두 함께 했습니다.

달리기 활동을 할 때는 휠체어를 밀어주며 뛰었습니다. 직접 뛸 수 없지만 달리는 기분이라도 느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피구 역시 함께 했습니다. 축구 역시 함께 했고요. 다른 역할을 할 수 없을 때는 심판을 맡거나 사진기사 역할을 하며 수업에 참여했고, 직접 할 수 없는 경우 가급적 그 기분이라도 느끼게 해주려고 많이 고민하고 노력을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은별이와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임을 제가 먼저 삶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체험활동 역시 가급적 모든 체험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 해동안 진행된 열 한 번의 체험활동 중 아이스링크만 스케이트를 타는 체험활동만 빼고 모든 체험활동에 참여했습니다. 높아서 올라가기 힘든 곳은 업고 올라가서 그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고, 심지어 기차와 지하철을 이용해서 평택에서 서울 대학로까지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아이들 속에 은별이는 자연스럽게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 싶었으나 또 하나의 문제는 은별이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그 간 받았던 상처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2학기 즈음해서는 은별이와 따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친구들에게 거절당하더라도 은별이 기분과 생각을 좀 더 용기내어 적극적으로 말하기라는 약속을 저와 했습니다.

한 번 두 번 그런 시도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지금은 자기 의사와 요구들을 적극적으로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심심하다는 말, 함께 놀자는 말도 먼저 꺼내놓고 말입니다.

2학기 들어 점차 자존감이 올라가더니 써 놓은 글에도 제법 자기 이야기가 솔직하게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은별이의 학업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학기 형편없던 성적이 2학기엔 제법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제 보니 4학년에 올라가서 처음 치른 진단평가에서는 국어는 한 문제만 틀렸고, 수학 역시 점수가 꽤 나왔습니다.

은별이의 모습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우리 은별이는 그냥 나보다는 조금 불편한 친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이들끼리 서로 챙기며 서로 자연스레 돕고 자연스레 어울리는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영수는 비언어성 학습장애가 있습니다.

 우리반 친구들에게는 동물박사로 인정을 받고 있는 친구이기도 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로 인정을 받고 있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분명 장애를 가진 모습이 더 크게 들어 올텐데 우리 아이들은 동물박사, 그림박사로 인정하며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참 신기한 일이지요. 어른들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교실 안의 자연스러움 때문이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가을에 있었던 학교 예술제에서 우리 영수는 음악극 무대에 하나의 역할을 가지고 섰습니다. 물론 아주 성공적으로 제 역할을 해냈고요. 무대에서 내려오는 그 녀석에게 물으니 엄청 떨렸다고 했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그 녀석을 꼬옥 껴안아 주고 있자니 눈물이 났습니다. 연습하는 과정에 담당 지도 선생님께서 영수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역할을 하게 해주십사하는 어려운 부탁을 드렸습니다. 과정은 비록 힘들었겠지만 힘겹게 지나온 결과가 너무 아름답고 멋졌습니다. 우리 영수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 4학년이 된 작년 우리 아이들에게 은별이와 영수는 지금은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친구들은 아닙니다. 그냥 나보다는 조금 몸이 불편한 친구로 자리잡았습니다. 은별이는 그저 휠체어를 타고 다닐 뿐이고, 영수는 조금은 불편한 동물박사, 그림박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때론 부모님들이 말씀하십니다. 우리반 아이들의 편견없음 때문에 때론 깜짝 깜짝 놀란다고 말입니다. 사실 아이들이 가지는 편견들은 어른들로부터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2009년 저희 반 아이가 쓴 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나도 언제 장애인을 만났는데 피했다. 대부분 엄마 때문에 피하기도 한다. 엄마들은 착각하고 있다.” 어른들도 함께 변해야겠지요.
 올해는 6학년을 맡았습니다. 아이들이 ‘장애’, ‘장애’라는 말을 쓰면서 친구들을 놀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올해 또 이 아이들의 삶 속에서 이 단어들이 가진 편견들을 넘어서게 하는 일이 제게 주어진 과제인 것 같습니다.

 다른 빛깔을 지닌 아이들이 자연스레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것을 가르쳐야 할 곳이 학교겠지요. 그 동안 모두가 똑같기를 강요했던 우리 사회가 심어주었던 편견들을 이제는 학교에서부터 조금씩 벗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빛깔을 지니고 서 있든 우리 아이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머리 뿐만 아니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교육이면 좋겠습니다. 서로 다른 다양한 빛깔들 서로 어우러져 행복한 무지개 빛깔 행복으로 피어올라 가기를 두손 모아 빌며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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