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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 인권 침해의 축제 - 스페셜 올림픽 김현숙 ((사)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공동대표)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겨울이가고, 봄이 오고, 여름을 견디고, 가을을 맞이하며 우린 각자 행복하게 살기 위해 분주하다. 소소한 행복에서 아주 거대한 행복까지 각자 느끼는 이 행복은 우리가 누려야 할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人權(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너무 추상적이라고 느껴지지만 이것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 받는 것, 즉, 사회와 국가로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 받는 것이라 말 할 수 있고, 이는 복지국가가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럼 어떨 때 우린 행복감을 느낄까?
차별을 받거나, 무시당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너무 피곤할 때등등... 생각만 해도 짜증스럽다. 그럼 이 반대의 경우가 우리가 느끼는 소소한 행복감이 아닐까 여겨진다.
즉, 행복이란 나의 권리, 다시 말해 인권이 보장 받을 때 주어지는 것이라 말 할 수 있고, 우리는 이 행복권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 행복권의 추구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 중 장애인도 포함 된다.

 비장애인들에게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하면, 행복, 자유, 책임, 성공 등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인권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장애인들에게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생각대로 말 할 권리,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권리, 시도해 볼 권리, 이동권, 정보접근권, 등 상당히 구체적이고, 생존적인 인권을 이야기 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해 많은 차별이 있음을 의미 하는 것이고 앞으로 이 인권의 차이를 줄여 나가는 것이 큰 숙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숙제를 함께 풀어나가야 할 시점에 뭔가 깔끔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바로 지난 1월29일부터 2월5일 까지 8일간 106개국 2,000여명의 선수들이 참여하여 개최된 2013 평창동계스폐셜올림픽 세계대회이다.
 “Together we can!”의 슬로건을 걸고, 각계각층의 많은 홍보대사들의 참여와 공중파를 포함한 각종 언론매체에서 관심을 보여 흐믓한 느낌이 들었는데, 출전한 선수들에게 위치 추적기가 지급되어 논란이 일어 유감스러웠다.
 평창동계스폐셜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는 IT 강국답게 세계 최초로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위치추적단말기를 배포하였다는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이 위치추적기는 지름 4cm, 두께 1.5cm크기의 목걸이형으로 카메라까지 달려 있어 24시간 실시간으로 위치와 사진, 영상 등을 중앙통제실에 매시간 전송하여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 되는 기계라고 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화장실을 가도, 잠을 잘때도, 옷을 갈아 입을 때도, 극히 개인 사생활이 보장 되어야 하는 그 순간까지도 누군가에게 노출 되는 기계였던 것이다. 발달장애인은 장애 특성상 의사소통의 차이로 어려움이 있지만 이들도 존중받아할 인권을 지닌 인격체이다. 그러나 조직위원회에서는 이들을 존중받을 인격체가 아닌 단지 보호 받아야 할 존재로 여겼다는 것이 화가 난다.
 장애에 대한 패러다임도 예전엔 장애인을 무능하고 치료와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재활패러다임에서, 장애인 당사자 주권을 중시하고 적극적인 권리 의식에 근거한 자립생활 패러다임으로 빠르게 변화 하고 있으나 이번 조직위의 발상은 이 패러다임에 역행하는 사고가 아닌가 여겨진다.


< 평창 스페셜올림픽 개막식에서 선수들이 밝은 모습으로 입장하고 있다 >

 발달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자유롭길 원한다.
 혹 위험에 처하더라도 자유를 가지고 자기 자신이 그 위험에 대항도 하고 실패도 하며 삶의 방법을 배워나가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개개인 모두가 귀한 존엄성을 가진 존재인데, 의사소통에 차이가 있다고 단정 지어서, 위험하니까 보호해야 되기 때문에 라는 어줍지 않은 이유는 장애인 입장이 아닌 비장애인 입장으로 바라본 차별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대회를 준비하며 ‘안전’은 가장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지만, 이 문제를 꼭 기계로 풀어야 했을까 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발달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을 해주면 될 것이고 그 정당한 편의 제공은 자원봉사자나 활동보조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 되었을 것이다. 조직위에서는 인력 확보가 쉽지 않았다고 하지만 좀 더 치밀한 계획으로 임했다면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국내외 유능하고 매우 바쁘신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섭외한 그런 능력 있는 조직위이기 때문에, 대회 홍보를 위해 그 정도 노력의 결실을 얻었다면 대회의 가장 중요한 선수들의 안전을 책임 질 인력 확보는 그 무엇보다 우선 되고, 열정적인 방법이 모색 되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런 인력 확보를 통해 이번 대회가 지향하는 참여, 변화, 화합을 실천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지는 자연스런 사회통합을 꾀할 수 있는 그런 따뜻하고 알찬 대회가 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과 함께, 겉으로는 매우 화려했지만 결국 당사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한, 주객이 전도된 듯한 결과가 되어 매우 씁쓸하다.


< 스페셜올림픽에 출전한 한 선수가 위치추적기 목걸이를 차고 있는 모습 >

 우리 집엔 발달장애인인 작은 딸과 비장애 큰딸이 있는데, 예전 큰딸이 사춘기 시절 까칠하던 때에는 동생에 대한 답답함으로 동생에게 호의적이지 못하여 늘 작은 딸이 큰딸 눈치를 보며 두려워했다. 몇 년 후 큰딸이 동생의 장애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서는 동생의 힘든 행동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둘의 관계는 친한 자매 사이가 되었고, 작은 딸은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장애인은 그들의 삶을 자기 자신이 온전히 책임지며 사는 것이 다소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주변의 환경에 의해 행복과, 불행이 교차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 동계올림픽 문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국가와 사회가 우리 장애인들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에 따라 이들의 삶의 질이 결정되고, 이때 보호라는 미명하에 인권존중보다 보호가 우선이라는 착각의 늪에서 빠져 나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동등하게 존중 받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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