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단 메뉴 바로가기
  2. 본문 바로가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야기 프리즘
HOME > Webzine 프리즘 > Webzine 프리즘
본문 시작

webzine 프리즘

프리즘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분기마다 발간하는 웹진입니다

지난호바로가기 이동

양심을 지킬 권리 - 병역거부의 자유를 허 하라 나무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북한이 유엔의 대북제재와 한미 연합훈련에 맞서 형식적으로나마 유지돼오던 정전협정 효력 전면 백지화를 발표하고, 이어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를 선언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한국을 떠나있던 때였다. 당장이라도 전쟁이 발발할 것 같던 긴장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 다만 도발과 강경대응 의지 어딘가에서 병역거부자들과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 더 나아가 비폭력과 평화를 고민하는 이들이 십 수 년간 맞닥뜨려왔고 앞으로도 계속 직면할 거친 언어와 무력감에 다시금 멈칫한다.

 병역거부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다. 병역거부자들이 그때서야 비로소 등장했기 때문에? 아니다. 한 시사주간지의 “차마 총을 들 수 없어요”라는 기사로 병역거부자가 조명되기 시작한 2001년, 감옥행을 감내해야 했던 병역거부자의 수는 이미 1만에 달했다. 강제입영된 병역거부자들이 집총을 거부하면, 이튿날 다시 한 번 총을 쥐어주면서 항명죄를 여러 번 범했다며 가중처벌하였다. 1994년에는 2년이던 항명죄의 최고형을 3년으로 개정하여 병역거부자들에게 기계적으로 3년을 선고하기 시작했는데, 형사법정에서 법정최고형이 그대로 선고되는 경우는 거의 유일할 정도였으니 이들에 대한 처벌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알 수 있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 엄청난 수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지는 않았다.

병역거부를 보지 못한 이유?

 역사 교과서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지정학적 위상 때문에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을 뿐 침략전쟁에 동참한 적 없는 평화적 민족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화와 달리 한반도의 군대(인민군과 한국군을 포함한다)는 국경 안팎의 전쟁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왔다. 제주 4·3, 한국전쟁, 광주학살이 우리 땅에서 벌어졌으며,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참전은 ‘외세의 침략만을 받아왔을 뿐’이라는 수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외세에 대응하는 한국 안보 논리의 핵심은 보편적 병역의무를 통해 군사력을 확보하여 외침을 방지하며, 남성이라면 누구든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복무해야 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의 군사훈련과 현재와 같은 처벌이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 후 국방부 장관이 집총 거부자들이 가급적 비전투분야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명령하기도 했고, 징역형이 정착된 이후에도 유신 이전까지는 6개월~1년 사이의 형량을 선고받았으니 형도 지금보다 덜했다. 그러던 것이 유신 직후인 1973년부터 병역거부자의 입영이 강제되고, 2년 이상의 형이 선고되기 시작한 것이다. 군사정권은 군대와 병역을 신성화시키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했고, 연 7-800명에 이르는 강제입영과 감옥행은 병역거부자의 절대다수였던 여호와의 증인만의 일일 뿐 인권 침해로 인식되지 않았다.

병역거부의 가시화

 2001년 말, 오태양이 여호와의 증인 아닌 불교신자 및 평화주의자로서 최초로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병역거부운동이 시작되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사회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사법부의 발 빠른 변화는 놀라웠다. 군사법원에서 최고형인 3년형을 선고하던 관례가 깨지고, 재징집당하지 않을 최소 형량인 1년 6월이 선고되기 시작하였으며, 2002년 초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이뤄지고 2004년 무죄판결을 받는 파격이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대법원의 유죄확정판결과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으로 곧 정리되었지만, 다수의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은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도 밝혔다. 하지만 ‘양심’이라는 단어의 중의적 의미 때문에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조’를 포함하는 헌법상 양심 개념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어려웠고 “군대 가면 비양심이냐”는 비꼼과 격렬한 반발에 직면했다.

한국의 군대, 남성의 병역의무

 한국사회에서 병역문제는 엄청나게 민감한 사안이다. 분단 상황과과 안보 이데올로기가 징병제를 불가침의 제도로 성역화한 만큼, 남성은 병역의무에 따라 전인격적으로 징발된다. 단적인 예로 한국에서 군 복무 중의 ‘비전투 인명손실’은 거의 6만 명에 육박한다. 전쟁 상황이 아닌데도 한국군에서 매년 1000명의 군인이 죽어나갔다는 것인데, 이라크전 연평균 미군 사망자보다 많다. 이처럼 군대경험은 고통스러운 만큼 명예롭다 얘기되지만 명예만으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기도 하다. 게다가 군대가 기존 사회의 계층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누구나 평등하게 경험하는 곳이 아니라 ‘어둠의 자식’만 가는 곳이라 자조하게 되었다. ‘누구는 군대 가고 싶어서 가냐’며 군 복무를 피하고 싶은 열망은 누구나 가기 싫은 군대이므로 한 명이라도 제외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이어진다. “왜 남들 다 가는 군대를 갈 수 없다는 거냐”는 획일적 태도와 ‘공평한 희생’이라는 논리 속에서 병역거부는 병역기피나 병역비리와 다를 바 없이 군(미)필자의 분노를 자아내왔던 것이다.


< 이라크 파병에 반대해부대 복귀를 선언한 강철민 이병 >
평화를 해치는 병역거부?

 한국에서 병역거부는 ‘평화운동’으로 등장하였지만, 사회적으로는 국가안보와 국내의 ‘평화’를 저해하는 행위로 인식되기도 한다. 병역거부자들이 흔히 받는 질문은 “강도가 당신의 아내/여동생/딸을 강간하려는 데도 가만히 있겠는가” 이다. 이러한 사고에서는 군대나 전쟁의 실제가 간과된 채 남성의 소임이 병역에 고정된다. 외부의 위협과 무력분쟁이라는 상상에, 대한민국의 남성이라면 이에 대비하여 부모형제친지로 등치되는 국가를 지켜야 하며, 군사력을 갖춰 힘의 균형을 통해 전쟁을 억지하는 것이 국가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라 이해되는 것이다. 병역거부는 그런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는 다른 남성에 기생하여 보호받겠다는 양심 없는 행위로 읽힌다. 그러나 우리 군에서 한해 1000명의 군인이 죽어나간 것처럼, 때로 군사력 중심의 안보는 ‘온전한 삶’이라는 총체적 안보를 해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러한 ‘평화’나 ‘안보’는 다만 국가 간 군비 경쟁을 통해서만 구현되며 필연적으로 군수산업과 결탁하여 전 세계적인 전쟁 증대에 기여하게 된다. 이데올로기를 걷어낸 군대와 전쟁의 맨얼굴은 그런 것이다.

특수한 안보상황?

 우리의 ‘여전히’ 특수한 안보상황,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정전협정을 백지화하며 남북 불가침합의를 폐기한 위기를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에 대한 반대근거로 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영국은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동서로 분단되어 있던 1961년에 대체복무제도를 시행하였다. 이스라엘이나 중국과 대치중인 대만 역시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를 인정해 오고 있으며, 어느 나라에서도 대체복무 인정 자체로 병역거부가 급증했다는 보고는 없다. 대체복무제도는 황당한 제도가 아니라 이미 여러 나라에서 수십 년간의 시행을 거쳐 검증된 역사적 제도인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형량이 1년6개월로 줄어든 이후에도 병역 거부자 수에 거의 변동이 없었다. 병역비리나 병역기피가 격증할 것이라는 우려는 대체복무자 심의 선별 절차를 잘 설계하고 운영하여 해결할 문제이지 대체복무제 개선 여부 자체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는 어렵다.

병역거부의 목소리에 공감하기

 병역거부가 가시화된 이래 10년간 7000이 넘는 수감자가 더해졌고, 오늘도 두세 명이 ‘유죄’ 선고를 받고 수복을 입게 될 것이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해 대체복무제 개선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병역거부의 ‘목소리’는 피해를 드러내고 얼마나 많은 숫자가 얼마나 오래간 감옥에서 보내는지, 이들의 감옥행을 멈추기 위해 대체복무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이 “조국을 지키는” 숭고한 주인공이 아니라 구조화된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고민하고 고백해 왔다. 이길준 이경은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을 ‘진압’하다가 부대 복귀를 거부하면서, 대체복무를 요구하지도 감옥행을 막아 달라 호소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위계의 연쇄 고리에 내가 위치하고 있다고 자각하고, 그 연쇄 고리에 문제제기하는 행동으로 비폭력에 대해 말 걸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개개인이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것만으로 언론이나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시대에, 나는 그런 민감함을 나누고 한 명에게라도 더 이야기하는 것이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준비하는 일이라 믿는다.

프린트하기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