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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소통

자동차와 시각장애인


자동차와 시각장애인 하성준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실장)


 지금까지 이 글을 연재하면서 늘 나 자신을 어느 학교 누구라고 소개했는데 이제 한국에 돌아온 지 약 1달이 넘어가면서 나를 소개하는 내용이 바뀌게 되었다. 아직은 좀 어색하지만 곧 새로 가지게 된 직함에 익숙해지리라 믿고 오늘 이야기를 풀어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에도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이 많지만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수단이 많이 발달하지 못한 미국에서는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이다. 학교에 가든, 식료품을 사든 자동차로 이동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일상화된 미국에서 자동차는 또 하나의 소외계층을 만들어내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운전을 못한다는 것이 큰 결격사유가 될까? 직장을 구하는 문제나 사람을 채용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을런지는 모르지만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없다는 의미가 상당한 일상생활의 제한을 의미한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을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므로 장애인을 포함해서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시간 또는 돈이 많이 드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동차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쇼핑센터를 버스를 이용하면 기다리는 시간을 빼고라도 30분 정도가 걸린다. 이것도 짧게 잡은 시간이고 버스의 운행경로가 길어지면 더 오랜 시간 버스 안에 있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다니던 학교의 장애인이동편의서비스는 버스와 같은 교통수단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에만 이용할 수 있었다. 즉, 수업이 8시부터 시작인데 버스가 9시 부터 운행을 시작한다거나 수업이 밤 10시에 끝나는데 버스가 오후 8시가 되면 운행을 마친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고서는 이용할 수 없었다. 택시의 경우에도 비슷한데 대도시에서는 길에서 택시를 잡아 탈 수 있지만 조금만 작은 도시로 가도 콜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택시를 기다려야 하고 공식적 택시요금에 팁을 얹어서 지불하는 미국문화 덕분에 비용적 부담도 크다. 이와 같이 미국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버스나 택시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경험해 보았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은 아주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동차와 관련해서 미국 시각장애인연맹(NFB)과 많은 시각장애인당사자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자동차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오늘은 미국 시각장애인들과 자동차라는 주제로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자동차는 살인무기가 될지도 모른다!

 “조용한 자동차 (Quiet car)"는 미국 시각장애인들에게 생소한 용어가 아니다. 이는 최근 차세대 자동차로 알려진 하이브리드 (Hybrid) 자동차나 전기 자동차를 일컷는 말이다. 이러한 자동차는 기존의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자동차와 달리 자동차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전기를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사용하여 소음이 적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청력에 의존해서 보행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이러한 자동차는 자립생활의 기본이 되는 보행능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를 두고 미국시각장애인연맹은 ”조용한 자동차 (Quiet Cars)"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 위험성을 알리는 한편 대책을 지속적으로 미국 정부 및 국회에 제안하고 있다.

 미국시각장애인연맹의 조용한 자동차와 관련한 활동을 크게 구분하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과연 얼마나 시각장애인들의 독립보행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해 연구하는 것이고 또 한가지 측면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관련된 연구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국내외 언론을 통해 소개된 적이 많으므로 주요 쟁점만을 언급하자면 다음의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언제 조용한 자동차가 그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실험했는데 결론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전기를 주요 동력으로 사용하는 때, 즉, 차량이 정차해 있거나 시속 20킬로미터 이하의 속도로 주행하고 있을 때로 밝혀졌다.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심리학자 로렌스 로젠블룸(Rosenblum)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시각장애인이 20킬로미터 이하의 속도로 주행하는 차량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거리가 기존 내연기관 차량은 약 8미터 전방에서였지만 하이브리드 차량의 경우 2미터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을 때야 인지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소리만으로 자동차의 주행방향을 인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시각장애인연맹의 초기 실험들은 대부분 주차장과 같이 넓은 곳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실험에 따르면, 시각장애인들은 하이브리드 차량이 20킬로미터 이하로 주행하고 있을 때, 이 차량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는지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특히 사람의 뒤에서 차량이 다가올 경우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밝혔다. 결국 하이브리드 자동차들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위험요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시각장애인연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소음장치를 부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장치의 부착을 법률로써 의무화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미국시각장애인연맹은 이 장치에 다음과 같은 기능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우선 소음장치의 소음은 최소기준을 마련해서 소음장치가 유명무실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전기 자동차나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장점이 낮은 소음이므로 이 부분에 대한 미국시각장애인연맹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다음으로 미국시각장애인연맹은 소음장치가 자동차의 주행방향을 알려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동차가 우회전하면 차체의 오른쪽에 설치된 장치가 반응하고 좌회전하면 같은 방향의 장치가 동작하도록 설계하여 주차장과 같이 넓은 장소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이 충분히 차량의 이동 경로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끝으로 소음은 차량이 20킬로미터 이하로 주행하고 있거나 정차해 있을 때 발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미국시각장애인연맹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며 일본과 유럽에서도 이러한 노력에 공감을 표시하고 각국의 국내법으로도 유사한 내용을 법률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결국 지금 미국시각장애인들은 GM이나 포드와 같은 미국 최대의 기업들 나아가 도요다나 혼다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 UN 전문가 회의에 제출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보행약자를 위한 하이브리드 및 전기 자동차의 편의제공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그 증거이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차량이 정차된 상태에서는 소음을 발생시키지 않도록 하고 소음 역시 20킬로미터 이하로 주행할 때만 발생시키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 안에서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소음의 최소기준을 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 결국 소음발생장치의 마련이 자신들의 이익과는 상충된다는 것. 자동차회사들이 뻔뻔스럽게도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보행약자들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그들을 죽일 수도 있는 살인흉기를 만들겠다고 UN에 가이드라인을 제출하고 이것을 관철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에 미국시각장애인연맹과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장애인당사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싶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변화했고 장애인에 대한 국민대중의 인식도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작금의 장애인고용공단과 권리조약을 둘러싼 여러 정황들은 여전히 장애인을 무시하고 배제하려 하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장애인이 아니고서는 장애인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장애인당사자라고 말할 수 없다. 결국 장애인당사자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가 장애인의 완전한 자립과 사회참여를 위해 일해야 한다. 그 대상이 글로벌기업이라고 일컬어지는 대기업이든 국제연합과 같은 국가연합체이든 우리는 두려워하지도 주저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시각장애인도 운전할 수 있다!

 미국시각장애인들의 두 번째 자동차 이야기는 바로 시각장애인이 운전하는 시대를 열기 위한 노력이다. "Blind Driving Challenge"라고 이름 지어진 이 장기계획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작되었고 지난 2009년 드디어 첫 번째 결과물이 탄생했다. 당시 버지니아공대에 재직중인 한국인 교수의 연구팀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우리 언론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시각장애인이 운전하는 자동차이다. 나는 오늘 이 자동차에 대해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자동차가 만들어지기까지 미국의 시각장애인당사자들이 전개해온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미국의 장애인당사자들은 자립생활이라는 하나의 철학에 토대를 둔 행동목표를 가지고 있다. 시각장애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시각장애인의 완전한 자립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숙고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완전한 자립생활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가운전(Driving by oneself)"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목표의 달성을 위해 처음 미국 시각장애인들은 넓은 공터에 시각장애인들이 스스로 운전이라는 것을 해 볼 수 있도록 체험활동을 겸한 조사연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시각장애인들이 보조좌석에 앉은 정안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운전하기 위해서는 1) 속도계를 포함해서 자동차 내부의 계기판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2) 핸들의 움직임에 따른 자동차의 주행방향변화를 인식하며 3) 자동차의 진행방향을 미리 파악해야 하고 4) 자동차가 주행하는 전방에 장애물이 있는지 여부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비를 책정하고 연구진을 공모한 결과 버지니아공대의 연구팀이 개발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자동차는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3차원 촉각지도, 음향센서 시스템 및 진동경보 시스템 등을 장착하여 혼자서 운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자동차는 이제 걸음마를 내디딘 것이다. 언론보도와는 달리 실제 시각장애인들이 혼자서 운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운전면허를 딸 수 없는 현행 법률에서는 향후 자동차의 개량을 위한 조사·연구활동에 제약이 많다. 또한 거리에 질비한 교통신호판과 복잡한 도로신호체계를 시각장애인이 혼란없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뿐 아니다. 도로 자체를 이해하는 것과 함께 앞뒤 그리고 좌우에서 달리고 있는 차량들의 상태를 이해시키기 위한 시스템의 개발도 난제 중의 난제이다. 이러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아직도 미국시각장애인연맹은 시각장애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전체험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그들이 운전을 체험한 후, 제출하는 보고서는 향후 시각장애인의 완전한 자가운전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 1급인 내가 운전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뭘 한다고 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웃어버린 적이 있다.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높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하면 안 되고 미국이 하면 대단하다고 나부터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실제 미국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하다. 미국이라고 해서 장애인들에 대해 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습을 우리가 부러워하고 있으며 많은 장애인정책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들을 모델링하고 있지만 그 속은 결코 우리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나는 다만 미국 시각장애인들의 도전정신을 배우고 싶다. 시각장애를 가진 나 조차도 “그게 될 법한 일인가!”하는 일을 10년 넘게 계획하고 추진해 왔으며 앞으로도 더 개선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미국의 시각장애인들. 그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계획을 196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달을 향한 도전 (The challenge to the moon)”에 비유하면서 많은 시각장애인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꿈, 완전한 자립생활의 성취를 위해 미국 시각장애인들이 세운 목표, The Blind Driving Challenge를 달을 향한 도전에 비유한 미국 시각장애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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