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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장애인인 나의 현실 정치참여.윤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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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 나의 현실 정치참여.윤석권

지난 2002년 16대 대선.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되었다. 투표일 당일 새벽.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던 정몽준씨가 노무현 후보에게 등을 돌리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16대 대선은 역대 어느 대선 못지 않은 대혈투였다. 나는 노무현후보를 지지했던 평범한 한 시민으로서 대선의 전 과정에서 일희일비했고, 그 결과에 환호했다.

2003년 4월.KBS 다큐멘타리 인간극장 “지선아 사랑해”를 시청하게 된다.
얼굴을 포함한 전신 80%이상에 중화상을 입고 기적처럼 살아난 20대 여성의 삶과 그 가족의 사랑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나는 이 다큐멘타리를 인터넷을 통해 한 번 더 보았다. 나 역시 안면에 화상을 입은 터라 방송을 통해 바라 본 그녀의 삶은 온전히 내 이야기에 다름 아니었다. 혼자 밤늦게 인터넷을 통해 재방송을 보면서 매회 울었다. 그러고 나서 5월에 내 생애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정당에 입당하게 된다. 바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개미”들의 정당, 개혁국민정당(개혁당)이다.

한 편의 다큐멘타리가 잠자고 있던 나의 처지와 양심을 깨우고, 나의 정체성을 일깨웠다. 화상장애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결국 고민 끝에 생활인으로서, 또 장애인으로서 정당활동을 하자는 결심에 이른 것이다. 평범한 시민으로서 정당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우리 정치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장애인의 정체성을 새삼 부여받은 내게 공식적으로 활동 가능한 영역이 필요했다.

입당을 하고, 지역의 당원과 또 장애인 당원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두 개의 질문이 내게 숙제처럼 던져졌다. 그리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야 했다.
두 개의 질문중 하나는 화상장애인인 내게 정당은 어떤 의미인가였다.
희박하기는 하지만 내게도 정치적인 이념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정당 다 제쳐두고 개혁당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우리 정치현실에서 당원이 당비를 내고 당 운영에 당원이 직접 참여하는 유럽형 당모델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내게는 정치적인 이념 이전에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그것이 정당이 내게 주는 의미였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그 날의 사고 이후 박탈당한 화상장애인에게 정당은 정치적 이념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인 집단 이상의 그 무언가이다.

또 다른 질문은,“정당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였다.
인터넷을 통해 입당을 하고 지역위원회에서 신입당원 환영식을 할 때 당원모임에 참석했다.나를 제외한 당원 모두 비장애인이었지만 첫 대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장애인 당원의 입당을 환영했다. 당내에서,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인과 관련한 문제에 열심히 일해 줄 것을 당부하고 격려했다. 그리고 적극 지지하고 돕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랬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장애인 문제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화상장애로 인해 겪고 있는 애로사항에 대해 나 만큼 잘 아는 사람이 누구겠는가. 어차피 그것이 애초에 입당하게 된 동기 아니었던가.

이후에도 지역 모임이 있으면 꾸준히 참석했다. 우리 지역에서 내 얼굴을 모르는 당원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거의 모든 모임에 참석하고 나서, 영역을 전국으로 확대해 나갔다. 바로 개혁당내에서 장애인위원회를 설립하기 위해 당사자들의 모임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서울, 인천, 성남, 그리고 충남 등 각지에서 올라온 장애인 당원들과 당사자들에 의한 장애인위원회 설립에 대한 공론화 필요성을 논하고, 그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가칭 장애인위원회 준비위원회로 모인 우리들의 모임은 참으로 다채로웠다. 휠체어를 타고 온 1급 지체, 목발을 짚은 2급 지체, 3급의 안면화상, 뇌병변 장애, 그리고 구화가 가능한 청각장애와 구화의 통역에 의해서만 대화가 가능했던 또 다른 청각 장애까지 참으로 이렇게 다채롭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만남이 이전에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또 다른 장애영역에 속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내가 가진 장애만이 제일 고통스럽고 암울하다는 생각을 조금 덜게 해 주었다. 화상장애를 넘어서 장애인이라는 공통분모가 나와 다른 유형의 장애인당원들이 하나라는 유대의식을 갖게 했고, 곧 그것이 당에서 장애인과 관련한 일에 대해서 자발적으로 일하게 한 동력이었다. 장애인 당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장애인 문제에 있어서 한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 여러 이슈들이 있음을 배워 나갔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들의 정치참여는 필수적임을 장애인 당원 모두는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최근 민주노동당은 보도자료를 통해 임시 당대회에서 장애인위원회의 상설을 통과시켰다고 알렸다. 한국정당사상 장애인위원회가 상설로 받아들여진 것은 최초의 일이다."부문별"위원회 성격이 아닌 "과제별"위원회라는 것이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기는 해도 어쨌든 대단한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우리당이 창당될 당시 창당발기인으로 동참하여 열린우리당 당원의 신분이 된 지금, 당내에서 장애인 당원으로서 직면한 최대의 관심은 장애인 당사자에 의해 건설되어 장애인 문제의 해결점을 찾는 데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장애인위원회의 상설화다. 우리당 창당 때 부터 지금까지 장애인 당원들은 음으로 양으로 많은 노력을 했다. 비록 우리당 인터넷 게시판 e-party에 그치고 말았지만 전국위원회에 여성,청년과 더불어 장애인위원회가 나란히 배치된 것도 그 한 예다. 그리고 내년 1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장애인위원회의 상설화는 99.99% 확정적이다.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장애인에게 있어선 더욱 그렇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만이 파이 한 조각이라도 더 빼앗아 올 수 있다. 언제까지 감나무에서 감 떨어질 날만 기다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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