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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소통

나라살림의 밑빠진 독을 막는 사람들


‘이해와 오해’ 사이에 서 있는 우리 김정아


김정아님 사진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미디어교육을 진행했을 때의 일이다. 강사로 참여했던 후배가 첫 수업을 마치고, 나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교육 중에 선생님들의 반응을 알 수가 없어요.”
경증 장애를 가지신 분들도 계셨지만 언어장애, 뇌병변 1, 2급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로 이루어진 수업에서 처음 장애인들과 마주한 후배는 정말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첫 수업이라 긴장해서 그럴 것이라고, 수업을 꾸준히 진행하다보면 괜찮을 거라고 위로의 말을 했지만, 후배는 자신 없어 했다.

 2년 전 자립생활센터 간사로 들어왔던 첫 출근 날, 10명의 직원, 활동가 중 6명의 장애인 직원 분들이 계셨다. 난생 처음 장애인분들과 마주하는데,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좌불안석이었다. 도와줘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나만 혼자 씩씩하게 밥을 먹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다’는 후배처럼 나 역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쯤 되면 다들 말한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 그 쉬운 해결방법이 왜 그때는 가장 어려웠을까. 질문조차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후 직원교육 자리에서 이런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준 장애인 동료들 때문에 마음을 열고 솔직해질 수 있었다.

 이해하고, 이해받았을 때 느껴지는 따뜻한 감동을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그 감동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센터 생활에 시간이 지날수록 언어장애가 있으신 활동가분들의 어눌한 말들도 능숙하게 알아듣게 되었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나 뵙게 되는 장애인회원분들에게 스스럼없이 먼저 말을 걸고 인사를 드리며, 점심시간에도 눈을 마주보고 대화하면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센터에서 진행되는 모든 프로그램에 대한 사진촬영이란 업무를 맡고 있었던 나로서는 그 관계의 벽을 깨지 않으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카메라 렌즈 뒤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과 솔직히 마주할 자신이 생겼기 때문에 장애인 직장동료, 회원 한 분 한 분과 눈을 마주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 중 함께 일했던 P간사님과 친해졌다.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지고 있는 P간사님은 씻고, 먹고, 옷 입는 것 등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 활동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이셨다. 하지만 발가락으로 컴퓨터 작업을 하시면서 당당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비장애인 못지않게 아이디어를 가지고 계셨다. 나는 P간사님과 3개월에 한 번씩 센터 계간지를 발행하는 일도 했었다.

 아이템 회의를 함께 하고, 취재, 편집을 진행하면서도 본인이 할 수 있는 바에 최선을 다하시고, 할 수 없는 부분에 주눅 들지 않으셨다. 그리고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는 비장애인으로서 나눠들게 되는 업무에 대한 무게도 이해하고 계셨고, 내가 지치지 않게 배려해주셨다. 같은 업무를 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P간사님 역시 책 읽기를 좋아하고, 소소한 일상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해서 일 외적으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술도 한잔 기울일 정도로 마음을 나누었다.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해져서 다른 비장애인 간사님이 질투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가끔 내 마음 속에 삐죽 끼어드는 감정 때문에 혼란스러운 적도 있었다. 함께 일한지 꽤 시간이 지났을 때, 혼자 취재를 하거나, 최종 편집 본을 검토해야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함께 업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P간사님이 해야 할 일까지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업무에 있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는 것만 같고, 간사님을 도와주는데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 것 같아서 괜한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싶었다. 누가 알아주라고 하는 일도 아니었고, 심지어 다른 사람도 아닌 친한 친구인 P간사님과의 일인데 이런 부담감이 생기다니. 한번 생긴 부담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센터에서 함께 점심을 하면서, 식사보조가 필요한 분들도 부족한 활동보조시간 때문에 동료들이 돌아가며 도와 왔었다. P간사님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점심식사 시간에 내가 식사보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몇 달이 지났을 때 슬그머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왜 예전처럼 돌아가면서 식사보조를 하지 않는 거지?’
 아무렇지 않게 P간사님 식사보조를 하면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그런 점심시간을 부담스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또 다른 비장애인 동료들조차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미워한 적도 있었다.

 내 마음에 생겨난 부담감, 그 부담감으로 인해 생기는 저 이기적인 감정이 누구나 가지는 보편적인 감정인지, 나만 유독 심성이 곱지 않아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했었다. 스스로 P간사님을 배려한다고 하는 행동이었는데, 가끔은 의무적인 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할 자신도 없고,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어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않았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P간사님은 이런 내 감추고 싶은 마음을 아셨을 것 같다.

 업무에서부터 사소한 식사보조의 이야기를 했지만, 여러 가지 부분에서 더 이해하고 양보하며 도와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는 비장애인들에게 있지 않을까. ‘때론 부담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을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스스로의 모습이 싫으면서도,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장애인 동료와 거둘 수 없는 거리감만 생기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린 다르다고. 하지만 정말 그것이 최선을 다해 우리에 대해서 고민하고 반성한 결과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마음에서 부끄럽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을 완전히 몰아내진 못했지만, 좀 더 홀가분하게 나와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장애인 직장동료에게도 비장애인 동료에게 부담주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몫을 해내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렇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하지만, 가장 쉽게 잊어버리는 중요한 사실이다. 두 번째는 나 역시 더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터놓지 못했기 때문에, 타협점을 찾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몰랐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이해받고 이해하려고 했다면 우린 더 돈독한 관계가 되었을지 모른다. 첫 출근에서 장애로 인한 다름에 내가 허둥지둥할 때 이해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2년의 시간이 흘러 P간사님과 이제 같은 직장에서 일하지 않지만, 나에게 간사님은 P간사님에서 ‘영원한 P언니’가 되었다. 시인이 되고 싶은 P언니가 쓴 시를 읽고 냉혹한 의견을 말하기도 하고, 가끔 언니에게 톡톡 싫은 소리도 해대지만 감추고 모르는 척 했을 때보다 더 가까워져 있음을 느낀다. 어제도 인터넷 메신저로 P언니와 대화를 나눴다. 곧 생일인데 갖고 싶은 게 없냐고 묻는 언니의 선물을 두 팔 걷어붙이고 거절하지 못했다. 일을 그만두고 쉬고 계시는데 부담이 될까 걱정이 앞서지만, 작지만 소중한 정성을 더 기쁘고 감사하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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