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단 메뉴 바로가기
  2. 본문 바로가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야기 프리즘
HOME > Webzine 프리즘 > Webzine 프리즘
본문 시작

webzine 프리즘

프리즘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분기마다 발간하는 웹진입니다

지난호바로가기 이동
인권REPORT

2011년, 나의 인권 체감온도


2011년, 나의 인권 체감온도 박현희 (장애여성네트워크 활동가)


 인권(人權, human rights)은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보편적인 인간의 모든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권리 및 지위와 자격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인권이 얼마나 보장받고 있을까? 과연 인권의 보장을 논할 만큼 성숙한 사회일까?

Art College of Seoul 회의중  ‘인권’에 관해 말하려면 국가의 삼부(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위치를 가진 기구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2000년대 들어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이다. ‘인권’이라는 총체적 개념을 전면으로 내세워 장애인, 여성, 외국인, 근로자등 사회적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지켜 주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했다. 그 믿음은 인권이 짓밟혔을 때 ‘인권위’의 문을 두드리게 했다. 인권을 유린한 그들에게서 다시 인권을 보장받길 원하는 희망을 가지고 진정서를 작성하고 제출한 결과는 참담했다.


 2009년 말, 나는 직장인 건강검진을 받기위해 주거지역 내 병원을 방문했다. “직장인 건강검진 받으러 왔습니다.”라고 밝혔음에도 “직장은 다니세요?”라고 묻는 간호사와 대면했다. 후에 소변검사를 받으러 병리실에 방문했을 때 배뇨기구가 없어서 배뇨기구인 넬라톤을 요구했더니 소변검사를 꼭 해야 하느냐, 집에서 받아오겠냐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직장은 다니세요?”라고 묻고 소변을 집에서 받아오라고 요구하는 병원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인권위’의 조사관이 진정내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는 피의자가 된 기분을 느꼈고 조사관은 잠정적으로 ‘서로의 오해다‘를 전제로 조사를 진행했다. 내가 아무리 반박을 해도 조사관은 병원의 입장만을 고수했고 성폭력 피해자들이 조사과정에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계속 떠올려 상처받는 것처럼 나의 주장을 이해시키기 위해 불쾌한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건강검진센터가 있는 2차 병원이다. 규모가 있고 여러 진료과가 있는 병원이다. 이런 병원에서조차 장애여성인 병원에서조은 짓밟혔고 ‘인권위’에 다시 한 번 유린당했다. 사회적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구가 약자의 편에서 인권을 보호하지 않고 사회와 제도 속에서 인권을 재단?계산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렇다면 다중차별을 겪고 있는 장애여성은 대체 어디에서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일까?

 장애인콜택시는 장애여성에게 있어 이동수단의 혁명과도 같다. 비단 장애여성 뿐만이 아니라 장애남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원하는 시간(물론 대기시간이 기약 없을 때가 더 많다)에 원하는 장소에 대기하는 장애인콜택시는 장애여성에게 사회활동기회를 제공했다. 장애가 너무 중증이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만 머물렀던 많은 장애여성이 장애인콜택시를 수단삼아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던 장애여성은 어느 순간 승객이 아니라 대상이 되어 있었다. 장애여성에게 성적인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기사가, 탑승을 돕는다며 은근슬쩍(혹은 대놓고) 신체접촉을 시도하는 기사가 그렇게 만들었다. 장애인콜택시 기사가 장애여성을 승객, 즉 소비자로 인식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기 힘들다.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는 동등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가파른 경사로를 올라가기 위해선 기사가 전동휠체어나 스쿠터, 수동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줘야만 하고 장애인콜택시에 올라타면 안전벨트는 기사의 도움이 있어야 착용할 수 있다. 장애남성의 경우 이런 부분에서 크게 개의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애여성은 ‘여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런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원천적으로 신체접촉이 불필요한 구조로 설계했다면 이런 화제를 꺼낼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장애인콜택시를 설계, 제작하는 과정에서 성인지적관점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렇게 늘 장애여성을 대하는 직업군에서조차 느낄 수 있는 인권마인드의 부재.

 며칠 전 지하철 역사 내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역사 내의 장애여성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보니 사람이 없는데도 화장실에 ‘사용 중’ 램프가 켜져 있었다. 마침 청소하는 분이 계셔 “화장실이 잠겼으니 해결해 달라”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바로 옆의 장애남성화장실을 가리키며 “남자화장실 가면 되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여성인 나에게 남성화장실을 권하는 미화원의 말에 “그럼 아줌마도 남성화장실 가세요?”라는 대답을 할 뻔 했다. “어떻게 남성화장실에 들어가요? 그냥 여기 문 열어주세요”라는 순화된 대답을 하고 결과를 얻어냈지만 화장실을 이용하는 내내 씁쓸했다. 비 장애여성에겐 그리 쉽게 다른 성의 화장실 이용을 권유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장애여성을 무성적 존재로 간주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이렇게 인간이 인간답게 삶을 영위하기 위한 보편적 권리인 인권을 최소한으로도 보장받기 어려운 것이 장애여성의 현실이다. 환경미화원을 고용할 때 따로 인권교육을 하지 않듯이 규모가 있는 병원에서도 의료종사자들에게 따로 인권교육을 하지 않는다. 국가기관인 ‘인권위’의 조사관은 인권을 재단하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교통수단 종사자들은 장애여성을 대상화한다. 이것은 국가적 차원뿐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의식에서부터 인권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인권교육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하는 이분법이 기저에 깔려있다. 이 이분법은 80년대나 2000년대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장애여성이 느끼는 것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프리허그 안아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여성이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선 어떤 절차가 필요할까? 어떤 제도가 필요할까? 사실 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절차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다. 보편적 권리를 누리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계층이 있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이라 함은 그야말로 보편적인 것인데... ‘누구에게 보편적이냐’를 우리는 잘 생각해봐야한다. 지금 장애여성인 나의 인권 체감온도는 4°C이다. 물이 고형화 되기 시작하는 온도인 4°C.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제도와 절차의 도움이 필요한 현 상황은 물이 얼기 직전의 살얼음판과도 같다.

 미취학 아동의 교육 커리큘럼부터 인권과 장애인의 이해에 대한 과정이 추가되고 초등학교부터 통합교육이 실시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장애인들도 서로 유형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다는 것, 우리한테 진부하긴 하지만 시민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해야한다. 다양성의 인정과 존중이 바탕이 된 인권교육이 바탕이 된다면 굳이 인권을 운운하며 살얼음판을 걷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으로 장애인권을 논할 때 장애인을 다양한 개개인이 모인 것으로 보지 않고 장애인을 집단화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성인지적관점이 필요한 사안도 연령별 솔루션이 필요한 사안도 장애유형별 관점이 필요한 사안도 모두 ‘장애인’으로만 한정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사회를 이룩해 다양한 장애인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한다. 그런 성숙한 사회가 온다면 살얼음판이 녹고 나의 인권 체감온도계 수은주가 따뜻한 봄날의 온도를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프린트하기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