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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나비의 단기적인 꿈 - 서선미 05. 컬쳐포유 엘나비나의 단기적인 꿈-여행을 각오하며..-서선미(방송작가)의 글입니다.

각오라는 말과 절대라는 단어는 쉽사리 사용할 수 없는 언어다.
  아니 사용되어서는 아니 되는 말이다. 너무 쉽게 작심을 드러내는 것은 자유인이 할 일이 아니며, 마음을 보여주고 할 일을 못하면 그또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럼에도 난 나의 속셈을 하나 둘 스스로와 낯선 이들에게 털어놓고자 한다.

  얼마 전하루끼의 <먼북소리>라는 책을 읽었다.
  매무새만 두터운 따름이지 그 안은 헐거워 몇 시간이면 금방 읽어버릴 만큼 책의 내용은 소프트했다. 햇볕아래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아먹을 시간이면, 내용안에 포함된 메시지를 알아챌 그런 책이었다.
  물론 실망도 컸다. 사진이 별로 없어 이국적인 맛을 느끼기엔 역부족이었고, 있는 사진조차 매우 조악하고 헐거워서 하루끼라는 명성에 금이 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번역도 만족치는 못했다. 번역가는 하루끼가 갖는 테마를 잘 모르는 듯 겉도는 단어들로 여백을 채웠다. 짧으나마 출판일을 해본 나로서는 그 번역가가 하루끼를 좋아하지 않거나, 하루끼적인 문장을 연구하다가 그만 하루끼라는 우물에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오히려 번역가의 마음상태와 건강상태가 걱정되었다.

  ‘다 나쁜 것은 아니었어요. 먼 북소리라는 제명에 맞게 마치 북소리 퉁퉁 치듯 그렇게가슴 때리는 멋은 있었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책이다.
  북소리를 듣고, 그는 떠났다고 했다. 북소리에 이끌려 그는 떠났다고 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였던가, 그 속에서 사랑을 하면 종소리가 들린다고 했던가.. 이 말은 내 절친한 친구도 내게 들려준 이야기였다. 이렇게 종종 서로 같은 생각을 하는사람들이 있다. 아무튼 내 친구에게 종소리가 사랑을 불러오듯, 하루끼에겐 북소리가 여행을 불러왔다. 그리고 재력있고, 영어 잘하고, 남눈 두려워하지 않는 그는 그리스로 떠났고,로마로 떠났다.

  먼북소리는여행의 이끌림에 대해 하루끼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거창하게 먼북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깽깽이소리, 대나무에 바람비벼대는 소리가 마음 속에 몰아쳐, 이러다가는 내 이 땅에 남긴 흔적 없이 가겠구나 싶은 그런 맘으로 난 여행을준비한다. 일년후면 내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난 목돈을 들고 지금쯤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자위하며, 난 이 글을 쓴다.

  바람이 깊으면 이루어진다는 마음으로 난 이 글을 쓴다.
  이 글을 보고, 내 여행이 성사될 것이라 빌어주는 익명의 그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생각하며 난 이 글을 쓴다.
  여행을 생각하며, 3년전이던가, 발디뎠던 파리를 생각했다. 일 때문에 들른 그곳에서 난 처음으로 자유라는 걸 느꼈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언어, 그리고 이국적인 풍광과 더러워보이지만 시와 예술, 사랑을 안고 흐르는 세느강의 아름다움에 난 끌렸고, 그것이 다른 이국에서와는 달리 나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사람들의 외면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없어도 있는 듯, 내가 있어도 없는 듯 물처럼 흘러가는 사람들, 바람처럼불어가는 사람들 틈새에서 생활하는 일은 행복을 주었다.파리의 이끌림은 그것이었다.흔히 똘레랑스라고 표현하는 너와 나의 다름과 차이를 아는 것, 그것은 여행자에게자유와 낭만을 동시에 주는 매력적인 포인트다.

  이러한 한가지 미덕쯤 그 어느 땅에 저마다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세계지도를 본다.
  그래서 난 여행을 준비한다.
  준비는 성공적인 여행을 완성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가늠할 수 있다는 초보자의 자세로여행을 준비한다. 그 다음 세상이 어찌되든 일단은 떠나고 볼일이라고 스스로에게 기운을 불어넣고, 하나둘 쌓여가는 통장을 보며, 발디디는 곳마다의 깊은 기쁨과 새로운 흔적을발견한다. 마치 사이버머니가 유형의 재화가 되어 채곡채곡 쌓여가는 그런 환타지를 느끼며... 첫 번째 내게 보내는 편지,

  ‘여행을 각오하며’는 내가 보기에도 참 말많고 거창하다.
  잘 되었으면 참 좋겠다.

  박희정의 감성만화 <호텔캘리포니아>에서의 레모네이드와 눈치챌 수 없는 가만한 바람을 꿈꾸며, 영화 <일포스티노>의 막 건져올린 파닥 뛰는 물고기의 생명력을 닮고자 한걸음 내딛으며,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의 우륵과 비화의 속적인 사랑에 배어 있는 날것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난. 내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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