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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해소에는 게토레이, 갈등해소에는 역지사지 - 노임대 04. 프리즘 갈증해소에는 게토레이, 갈증해소에는 역지사지... - 노임대(나사렛/성공회대 출강, 한국장애인단체 총연합회 정책기획팀장)의 글입니다.

"장애인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는 국민의 한사람’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서로 간의 ‘요구’가 완전히 소통될 것이고 가장 올바른 최선의 정책이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정부를 바라 보길 바란다. 무엇이든지 일방통행은 오래 지속되긴 힘들다. 우리도 정부를 존중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함으로써 완전한 쌍방통행 을 이루어야만 할 것이다."

  작년 한해는 정말 어수선 했던 한 해였다. 정부는 연초부터 ‘고용장려금폐지’라는 참으로 놀라고 어처구니가 없는 카드를 들이 댔고 장애계에서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 힘을 써서 ‘폐지에서 축소’라는 합의를 도출해 내었다. 무더위가 올 때쯤이면 하나 둘씩 국민의 발이라는 공공교통수단인 지하철에 소중한 생명을 빼앗겨 우리의 가슴에 눈물이 고이게 하였고, 결실의 계절인 가을엔 ‘지방이양’이라는 정말 생뚱맞은 국가정책에 우리는 너무나 힘이 빠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리고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LPG 지원 축소’라는 정책으로 정부에 대한 마지막 믿음마저도 얼어붙게 하였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같이 어려움이 다가온 원인은 장래의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눈 앞에 놓인 불만을 끄려한 정책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정책대상자의 욕구를 올바르게 파악해야 하고 이를 반영할 때 나타나는 문제들을 최소화시키도록 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장애 관련 정책은 장애를 가진 당사자의 욕구와 의견을 뒤로 한 채 수립되어 시행되었고 상기(上記)한 바와 같이 문제점들이 속출되었다.

  예를 들면 2000년 이후에 고용장려금을 갑자기 대폭 확대한 이유는 1990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사업을 평가하면서 너무난 많은 기금이 은행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장애계로부터 지탄을 받았고, 노동부는 고용확대를 위한 유인책이라는 명분하에 고용장려금을 대폭 확대하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기금 고갈로 인해서 이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하였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이로 인한 파장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쫓겨날까봐 매우 불안해하였지만, 정부는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는 장애를 가진 노동자에게 위안과 대책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는 핑계만 늘어놓아 급기야 그 불안은 점점 분노로 바뀌었고, 그제서야 뒤늦게 고용장려금 폐지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장애를 가진 당사자와 전문가, 그리고 정부 등의 모임을 통해 후속조치를 내 놓았다.

  우리는 잘못을 했을 때 구차하게 핑계를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하여 똑바로 시인하여 용서를 구하고 난 후에, 발생한 문제에 대하여 머리를 맞대고 서로 상의하여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있는 특히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더욱 더 믿고 있는 정부는 ‘미안하다 또는 죄송하다’라는 말 한마디 없이 ‘정책이 잘못되어서 돈이 더 이상 없으니 폐지한다’라는 말로 일관했을 뿐이다.

  이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는 처사로 밖에 볼 수가 없다.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장애인은 모두 착하고 말을 잘 듣는다’ 라는 착각의 늪에 빠져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 국민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450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기만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라고 규정하면서도 보호하긴 커녕 농간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책입안자나 수행자들은 종종 ‘줄 땐 가만히 있더니 지금에 와서 왜 그리 말이 많은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노사(勞使)가 다르듯 정책의 공급자와 그 대상자인 소비자의 입장은 너무나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 사이엔 항상 갈등이라는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갈등의 차원이 아니라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정부가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면 애초부터 생기지 않았거나 발생하더라도 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시 말하면, 장애인은 아무 일도 안하면서 무작정 받길 원하지도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데 누가 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장애인은 절대로 거지가 아니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데 주는 것에 대하여 좋아하지 않으며 그저 자신이 일한 것에 대하여 그에 따른 대가를 얻고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이런 작은 소망마저도 장애를 가진 사람은 품으면 안 되는 것인가?
  앞서 언급한 갈등이 서로간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여 생기는 문제라면, 갈등해소를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기 위해선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알기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야 하며, 알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세상은 소비자 중심주의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된 지 오래다. 그래서 재활대상자를 내담자에서 ‘소비자’나 ‘고객’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이에 반하여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도 공급자 중심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지 숙고해 바야 할 것이다.
  정부가 정책을 입안하기에 앞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무언가 베풀어야 하는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일을 해서 세금을 내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는 국민의 한사람’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서로 간의 ‘요구’가 완전히 소통될 것이고 가장 올바른 최선의 정책이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장애를 가진 본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를 가진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정부를 바라보길 바란다. 무엇이든지 일방통행은 오래 지속되긴 힘들다. 우리도 정부를 존중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함으로써 완전한 쌍방통행을 이루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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