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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과 장애인의 날 - 하성준(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직업복지팀장) 01. 포럼칼럼 4월과 장애인의 날 - 하성준(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직업복지팀장) 글입니다

난 14살 때, 실명하고 중학교부터 특수교육을 받았다. 특수학교에 입학해 보니 뜻하지 않은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꼭 건너뛰지 않는 연례행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연례행사 중에 하나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방이라 이것이 연례행사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출발하면 기념식에 참석하고 당시로서는 좀 과분해 보이는 도시락을 하나 받아 오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물론 수업도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나의 학창시절 장애인의 날은 “도시락 받아 오는 날, 수업 없는 날”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장애인의 날에 참석하는 것은 나에게 더 이상 연례행사도 아니였고 몇몇 장애인 친구들 외에는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장애인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친구들이 행사에 참여하곤 했지만 그것은 나에게 직접적인 것이 아닌 친구의 여러 일정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장애인의 날은 나에게 “과학의 날”이나 “저축의 날” 같은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은 평범한 기념일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4.20철폐투쟁... 하는 활동이 장애인계에서 시작된 이후 난 4월 20일이 장애인재활협회의 설립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행사도 장애인 본인이 아닌 복지진흥회가 중심이 되어 치러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장애인의 날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마치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를 앞두고 선생님이 시키는 것을 매일 조금씩 연습하고 다시 작은 운동회라고 해서 진짜 운동회처럼 하루종일 연습한 뒤, 엄마손을 부여잡고 참가하는 무슨 “가을운동회”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이는 장애인의 날 관련 예산도 진흥회가 가지고 있으며 내가 직접 참석해 본 준비위원회라고 참가한 회의에서도 장애인단체들이 건의한 내용은 모두 예산집행의 한계 등의 이유로 거부하고 장애인 당사자의 손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싶다고 하는 건의는 내년에 보자고 하는 등 행사를 위한 장애인의 날, 더 많은 예산을 위한 사업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장애인의 날이 왜 4월 20일이냐 하는 문제는 둘째치고라도 장애인 자신들을 위한 행사이고 자신들을 위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준비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함을 느낀다. 또 대부분의 장애인은 가을운동회에 참가하는 어린 학생이 아니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정부는 기억했으면 한다.

  최근 장애인당사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기득권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장애인지원단체들의 거센 기득권 지키기의 모습을 보면서 또 장애인당사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위한 것이므로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식의 약간은 억지스러운 주장을 볼 때, 장애인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써 장애인지원단체라고 할 수 있는 기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써 서글픔을 느낀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고 각자에게 맡겨진 일이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야 겠지만 장애인당사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금까지 장애인의 복지증진을 위해 노력한 많은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장애인은 절대 가을운동회에 참가하는 초등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본인은 절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 모르지만 많은 장애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이것이 우리 장애인당사자의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면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도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만 빠져 자가당착에 빠지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장애인의 날이 왜 4월 20일이냐 바꾸자 라는 주장 속에 철학적인 이념이 들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 스스로 준비하고 운영하는 행사가 될 수 있어야 하며 단순히 도시락 하나 받아가는 날이 아닌 200만 장애인의 몸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날이 되도록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이나 참가하는 사람이나 바라보는 사람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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